사슴이 샘물속에 비친 자기의 아름다운 뿔을 보게 된다.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다리는 몹시 가늘고 말라 볼품이 없었다. 뿔에 어울리지 않는 다리가 실망스러웠다.

그때 사자가 사슴을 향해 달려들었다. 놀란 사슴은 재빨리 도망을 쳤다. 들판을 지나 숲 속에 이르자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었다. 그제야 사슴은 후회했다. 볼품없는 다리가 자신을 살려주었지만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뿔이 자신을 죽게 했다고.

사슴뿔은 수놈에게서만 난다. 가을 발정기가 되면 날카로운 뿔을 들이대고 싸우기 시작한다. 여기서 '각축전(角逐戰)'이라는 말이 생겼다. 싸움의 결과에 따라 짝짓기의 서열이 정해진다.

사슴에 있어 뿔은 생존의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물건이다.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쉽고 도망갈 때도 장애가 된다. 그뿐 아니라 무게조차 만만찮아서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나 암사슴이 선호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사슴에 있어서 뿔이 화려하고 아름다울수록 '명품'이고, 명품은 곧 '우수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가 '성 선택(sexual selection) 이론'의 출발점이 된다.

혹독한 체중감량을 통해 S라인을 만들려고 하거나, 성형을 해서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는 것 따위도 명품에 대한 지향이다. 같은 맥락으로 상대방이 얼마나 부유한지 설명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비싼 사치품으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과시적 소비' 역시 사슴의 뿔인 셈이다.

요즘 "몸에 치장한 의상과 액세서리 가격만 4억원이 넘는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4억원 명품녀'가 세간의 화제다. 점심으로 천 원짜리 김밥 먹고 커피는 6천 원짜리를 마시는 '된장녀'는 오히려 귀여운 소비자일 뿐이다.

명품이 상대방에게 관심을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사람이 반드시 우수한 형질의 유전자를 지녔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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