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묘를 잘 써서 집안이 잘되면 ‘음덕(蔭德)을 입었다’고 말한다. 음덕은 내 능력보다는 조상 덕택에 잘된 경우를 말한다.

조선시대 집안에 사사로이 사람들이 들락거리면 정치적 모의를 한다는 오해로 반대파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가친척들조차 오는 것을 꺼려했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문중제사 때다. 이날은 출사한 벼슬아치를 비롯하여 백수서생까지 모여든다.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사에 참여하는 인척은 더 많아진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다고 이날은 소위 로비하는 날이다. 잘만 되면 대감의 눈에 들어 작은 벼슬 한 자리라도 꿰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고려시대 이후 공신(功臣)이거나 5품 이상의 관직에 있는 중신이라면 친족이나 처족을 추천에 의해 벼슬길에 나갈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를 음서(蔭敍) 또는 문음(門蔭), 음사(蔭仕)라고 하는데, 한 집안에 출세한 관료 한 사람만 있어도 어떤 형태로든 덕을 보게 되니 그게 바로 음덕이다.

전통적인 관리 등용 방법으로는 시험을 통한 과거제와 부모덕에 벼슬하는 음서제로 구분된다. 그러나 과거 또는 음서로는 한계가 있어 여기에 들지 못하면 대가제(代價制)라고 해서 녹봉 없이 품계만 주어 사대부가의 품위를 지키도록 하는 제도도 있었다.

음서라고 해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고 생원시나 진사과에 합격하고 대과에 급제하지 못한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음서로 관직에 오른 자는 청요직(淸要職)은 맡을 수 없었다. 곧,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홍문관이나 규장각, 그리고 청렴과 독립성이 보장되는 사헌부나 사간원이 청직(淸職)이고, 당상관 이상의 직위가 요직(要職)이다. 그러나 문벌의 영향력에 따라 이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도 흔했다.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를 두고 현대판 음서로 지탄을 받더니 드디어 장관이 낙마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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