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칼럼위원

민귀식 새장승포교회 목사
황해도 안악에서 깡패로 유명했던 김익두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몰락한 양반의 자제로 태어나서 무너진 자신의 가문을 일으키고 세상속에서 성공적인 인생을 펼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실력을 갖춘 젊은이로서 누구보다도 많은 노력을 했기에 응시한 과거에 합격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응시하고 난 이후 자신과 함께 공부하면서 자신의 실력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나는 명문가의 자제들은 합격의 영광을 누리면서 힘 있는 자리로 진출하는데 비하여 자신은 계속해서 낙방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가문의 배경이 없고 돈과 함께 실력자의 인맥이 없었던 청년 김익두였기에 그의 급제는 꿈도 꿀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인생을 비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 김익두는 그 결과 술과 벗하며 방탕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이 장사요 또한 무예를 익힌 김익두였기에 술을 한 잔 먹고 시장가에서 행패를 부리게 되면 그에게 덤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안악 고을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깡패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안악 시장에 5일장을 보려고 나오는 사람들은 동네 앞 서낭당을 지나면서 쌓여진 돌무더기를 향하여 돌을 하나 던지면서 빌기를 "오늘도 제발 장에 가서 깡패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주십시오"하고 치성을 드릴 정도로 소문난 난폭 꾼이요 폭력배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소안련선교사님이 인도하는 부흥집회에 원치 아니하게 참석하게 되고, 그 집회에 참석하여 선교사님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 결과 세상속에서 잃어버린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참된 모습을 발견하면서 삶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10개월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야로 계속해서 읽게 되고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1901년 1월에 소안련 선교사님에게 세례를 받고 구원의 사람이 되고난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06년 평양신학교에 입학을 하여 4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난 이후 1910년 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목사가 되어 40년 동안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목회자와 부흥사로서 능력있는 사명을 감당하시다가 6·25 당시 1950년 10월 14일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신천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시다가 후퇴하는 인민군의 총에 맞아 순교하게 됨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분이 김익두 목사님이십니다.

한국기독교순교자유족회가 발간한 "순교열전(1)"에 의하면 김익두 목사님은 770번의 부흥회를 인도했고, 150개의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세상을 원망하며 살고, 인생을 절망하며 살던 청년 김익두, 주어진 힘과 젊음을 낭비하면서 세상속에서 방탕하게 살아가던 김익두,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며 살던 인간쓰레기 같은 김익두, 세상 속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채 사회 속에 암적인 존재로 삶을 살아가던 깡패 김익두.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인해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존재목적과 희망을 발견하면서 훌륭한 목회자로, 능력 있는 사명자로, 위대한 부흥사로 이 땅에 길이 빛나는 아름다운 업적을 남긴 위대한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우리 인생의 참된 안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아름다운 삶을 펼쳐가기를 오늘도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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