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근무, 신현안전센터 백종재 구급부장

24시간 내내 긴장, 속병 항상 달고다녀…아픈 기억 떠오를 때면 견디기 힘들어

우리 사회에서 소방관은 '희생'의 상징이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불 속은 '그들의 일터'요, 생사를 넘나드는 위급한 상황은 그들의 '일상'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켜간 작은 음지 속에서 시민들의 가장 가까운 발이 되고 해결사가 되주는 백종재 구급부장(남·43)을 지난달 31일 신현 119 안전센터에서 만났다.

"엠브란스 싸이렌이 울리면 내 가족이라 생각하고 비켜주세요. 보호자는 애타게 구급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명의 길을 꼭 열어 주십시오"

백종재 부장의 올해 나이는 43세. 현재 거제시에서 활동하는 최장기 구급대원이다. 그가 구조한 사람만 해도 1만 5천명. 4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지만 부리부리한 눈망울에서 나오는 열정은 젊은 대원들 못지않다.

그가 긴급구조 대원으로 활동한 것은 지난 1995년부터. 검찰 사무직 공무원을 준비하던 이십대 중반의 백종재 부장은 우연히 알게 된 소방 공무원에 응시했다가 덜컥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된다.

"그땐 뭐 아무것도 몰랐지요. 소방 공무원이라 그러니까 불만 끌 줄 알았어요. 하하하."

그렇게 시작한 소방 공무원 구급대원의 길은 참으로 고단했다. 화재 진압을 하다가 환자가 발생하면 온 몸이 젖은 상태로 구급 출동을 하는 일은 다반사. 잘려나간 다리, 조각난 신체 일부를 병원에 이송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언제 어디서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니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습니다. 24시간 항상 긴장하고 있어서 속병을 달고 다니는 건 기본이지요. 그거 아십니까. 우리는 화장실에서 용변 볼 때도 언제나 출동할 수 있게 휴지를 손에 쥐고 '볼 일'을 본다는 거."

육체적인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바로 정신적인 고통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조금만 빨리 도착했다면 한 사람을 더 살릴 수 있었을 거라는 미련은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고. 비번 때 차를 타고 사고 현장을 지날 때면 당시의 기억들이 생생히 되살아나 가급적이면 나쁜 기억은 빨리 잊으려고 애를 쓴다는 그의 눈빛이 어느새 쓸쓸해졌다.

"급박한 상황에서 길을 비켜 주지 않는 차량들을 만날 때면 가슴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 갑니다. 심폐소생술의 경우 단 1분이 늦어서 살 사람이 죽고 멀쩡할 사람이 무서운 장애를 갖게 되는 일이 다반사니까요."

힘든 생활의 연속이지만 그를 지탱해준 힘은 단순했다. 바로 '보람'이었다. 몇 해 전 고현 주공 아파트 앞 하천에서 물에 빠진 어린이를 심폐 소생술 끝에 병원으로 이송했고 생사의 고비에 서 있는 아이가 15일 만에 무사히 정상으로 깨어났던 기억은 지금도 그를 흐뭇하게 만든다고.

"2년 전쯤 됐나요? 세면장에서 한 산모가 갑자기 아기를 출산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기와 산모를 한꺼번에 옮길 수가 없어서 격리를 시켜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고 현장에서 바로 탯줄을 제 손으로 잘라냈습니다. 의사도 아니고 남자인 내가 탯줄을 자를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15년의 구급활동 중에 수많은 황당한 경우를 만났지만 이 때는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세상살이 모두 다 힘든 거라며 모두가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백종재 부장. 그가 남긴 한 가지 당부는 뼛속까지 천상 '구급대원'인 그의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게 했다.

"2달 전 거제면에서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한 분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심폐소생술을 알고 있던 보호자 덕분에 소생할 수 있었습니다. 심장이 정지되고 4분이 지나면 뇌사가 시작됩니다. 심폐소생술 교육을 원하시는 분은 언제든지 소방서에 연락해 주십시오. 시민 여러분의 작은 상식이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고 백 부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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