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최장기 이장' 하청면 칠천도 황덕마을 허경식씨

혈기왕성하던 어부, 건강 악화로 생업 포기…식·농수 문제 해결, 섬마을 최대 '희망사항'
칠천교 연결다리 놓일 땐 춤사위 절로 나와

황덕도(黃德島).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河淸面) 대곡리(大谷里)에 딸린 섬으로 인구는 약 40여명. '아버지 섬' 칠천도의 부속섬이라 '아들섬'이라 불리는 황덕마을에는 24년간 묵묵히 마을을 지켜온 '살아있는 마을의 역사' 허경식 이장이 있다.

허경식(69·남)씨가 황덕마을의 이장으로 임명 받은 건 지난 1986년 3월 27일.  35세의 원기왕성한 어부였던 허 이장은 78년 무렵 점차 나빠지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어부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고 허 이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이장 일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습니다. 아무래도 뱃일보다는 수월할 것이고 일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그러마 했었지요."

그렇게 시작한 이장 직이 벌써 24년이 흘렀다며 감회에 젖어드는 허 이장의 깊게 주름진 얼굴은 지난 세월에 대한 회상으로 빠져들었다.

"마실 물이 부족해 마을 주민들이 고통 받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방법을 찾았습니다. 어느 해에는 마을 안 분교 운동장 100m를 팠더니 식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젠 살았구나 했지요. 하지만 기쁨도 잠시, 그 물은 해수가 섞여 있는 먹지 못하는 물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의 고생이 허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지요."

식수를 공수하기 위한 허 이장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러던 지난 95년 양정식 전  군수의 지원으로 허 이장은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식수가 풍부했던 육지근교 어느 마을에 지하수를 뚫었고 바다 밑으로 파이프를 연결해 식수를 끌어왔던 것.

"마을 지주들에게 사정사정을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았지요. 그것도 5∼8월 농번기, 가뭄이 들땐 물을 쓰지 않는 조건이었습니다. 200드럼짜리 탱크가 가득 차는데 5시간, 한번 받아놓아도 2∼3일을 채 못 쓰는 양이었지요. 지하수가 적었던 어느 해는 논 지주들이 물을 못 쓰게 반대를 해서 밤만 되면 몰래 몇 리 길을 혼자 가 꺼진 탱크 밸브를 다시 켜 놓기를 반복하는 일을 몇 년을 했습니다."

'물' 다음 문제는 '도선'이었다. 배가 있어야 사람들이 왕래를 하는데 도선운영 문제가 도무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한 것이 칠천도와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몇 사람 살지 않는 동네에 별걸 다 바란다'는 따가운 눈총도 많았다. 하지만 허 이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허 이장은 '사람이 많아야 혜택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지만 몇 사람 안사는 우리 주민들에게도 편리해 질 권리는 있다'고 당당히 말했다.

10여년 간의 긴 노력 끝에 드디어 황덕마을에서 칠천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건설이 결정됐다. 허 이장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건강 때문에 20년간 끊었던 '막걸리 한 탁배기'도 기분 좋게 기울였단다.

"배가 없어 그동안 우리 주민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누구보다 제가 잘 알지요. 연도교가 놓인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아 술 끊은 지 20년이 되었지만 한잔 했었습니다, 하하."

24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황덕마을 주민들을 위해 살아온 허 이장은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는 언제까지고 황덕마을 이장 직을 떠나지 않을 거라며 소박한 바람을 전한다.

"얼마전 황덕마을에 마을 회관이 새로 생겼습니다. 마을 주민 한 분이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 주셔서 요새는 매일같이 주민들이 모여 재미나게 어울리지요. 다른 바람이 뭐 있겠습니까. 그저 황덕마을 주민들이 조금 더 편안해지도록, 이장으로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일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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