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 결혼이민자…1997년 중매로 만난 남편 따라 한국행

5년전 거제에 정착, 꾸준히 한글공부 '언어장벽' 넘어 지금은 중국어 통역

한 아이의 엄마,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주부, 사회생활 경력 1년이 채 되지 않은 새내기. 고현동에 살고 있는 김영자씨(42)의 모습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사회 여성의 모습이지만 그녀에게는 이 모든 삶이 특별하기만 하다. 한국에서 살게 된지 만 13년차를 맞는 결혼이민자이기 때문이다. 조선족인 그녀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지난 1997년 10월. 중매로 만난 남편을 따라 한국행을 택했었다.

"한국에 대한 환상과 기대가 많았습니다. 88올림픽 이후 한국이 잘사는 나라라는 인식이 중국과 조선족사회에 퍼지면서 그 당시에는 한국에 들어가기만 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했죠."

김씨가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경기도 시흥시. 남편은 시화공단에서 일을 했다. 당시 그녀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언어문제. 조선족 출신이지만 중국학교를 다닌 그녀는 한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결혼이민자들이 거의 없어 한글을 배울 수 있는 시설이 없었습니다. 한국어 교재를 사서 자음과 모음을 배우고 사전을 통째로 외우다시피하면서 독학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녀의 열정은 한글공부 시작 후 6개월이 지나자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조금 서툴지만 제법 말도 할 수 있었고 대화의 60~70%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그녀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남편이 회사에 나가고 난 뒤 마트나 재래시장, 은행 등지에 나가 배운 말을 써먹었다.

"처음에 밖에 나가 말을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봤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사람이 이상하게 말을 해 교포인줄 알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 지금도 이야기를 하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사람들이 물어봐요."

언어문제 다음으로 그녀를 힘들게 한 것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부딪침이었다.

"중국에서는 남자도 청소하고 밥하고 빨래하고 다하는데 우리 남편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집에서는 아무 일도 안하고 해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요."

지난 1998년 잠시 거제를 들렀던 김씨는 2005년 가족들과 거제에 내려와 터를 잡게 된다. 당시에는 '잠시 있다가 다른 곳으로 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녀를 또 한번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거제시 결혼이민자센터(현 거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다니면서 한글공부도 더 하게 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됐습니다. 지금은 센터에서 중국어 통역과 결혼이민자 정착을 위한 상담을 하고 있지요."

월·화요일에는 아주동 거제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수·목요일에는 고현동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김씨. 상담일을 맡은 뒤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더 많이 접하게 된 그녀는 한국에 시집와 살게 된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다툼이 가정폭력으로 커질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일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면 가정이 붕괴되는 일이 생길 수 밖에 없죠. 바로 바로 다문화지원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으면서 남편과의 소통으로 오해를 풀라고 권해주고 싶습니다." 

센터일에 매진하고 있는 그녀지만 한 아이의 엄마이고 주부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중인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늘 부족해 미안하다는 그녀는 시부모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그녀는 "시부모님들이 국이 없으면 식사를 잘하지 못해 신경이 많이 쓰이지만 늘 건강한 모습으로 곁에 있어줘 너무 고맙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결혼이민자를 바라보는 곱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그녀는 지역사회의 따뜻한 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혼이민자 대부분은 지역사람들 만큼이나 열심히 노력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편견과 차별을 떠나 지역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받아줬으면 합니다."

지금 맡고있는 통역과 상담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그녀. 결혼이민자들의 정착은 물론 지역사회 봉사에도 참여하고 싶다는 그녀의 얼굴에 5월의 햇살만큼이나 눈부신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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