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즉 아버지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맹탕 헷것’일지도 모르는 ‘흰 쥐’ 때문에 운명적으로 남쪽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후 지금 민홍의 어머니가 된 철원네와 재혼하여 민홍을 낳았다는 것이다.

지난 해 돌아가기 전까지 아버지는 역사의 그늘 밑에서 무기력하고 왜소하게 구멍가게를 지키는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왔었다. 그에 반해 민홍의 어머니 철원네는 악착스럽게 살아가는 강인한 생활인의 모습을 지닌 말하자면 억척어멈이다.

한편 민홍은 이른바 운동권 학생으로 학교 교문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투석전에서 별동대로 조직된 화염병 투척조에 끼어 있다가 왼쪽 다리에 화상을 입고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진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병원을 찾은 민홍의 어머니 철원네는 이렇게 아들을 나무랐다.

「왜 그 자리에서 혀를 빼물고 뒈지질 못하고 이 꼴을 하고 자빠져 있냐! 이 에밀 못 잡아먹어 환장한 눔아. 오오냐 장하다, 장해. 이 민들레 씨같이 곤곤히 퍼진 집안에서 하마터면 만고충신이 하나 나올 뻔했구나 그래!」

이런 어머니 철원네의 아들 민홍에 악다구니는 남편인 아버지에게도 예외가 없다. 「이 씨를 말릴 함경도 종자들아」라고 외쳐대는 말투가 그것이다.

어느 날 구멍가게 안을 좀먹고 있는 생쥐 한 마리 때문에 아내인 철원네에게 매일 싫은 소리만 듣게 된 아버지가 며칠째 속수무책으로 애만 끓이고 있다가, 고민 끝에 생쥐의 약점을 간파해내고는 소금물과 끈끈한 아교를 이용해 드디어 그 생쥐를 잡게 된다.

아버지는 잡은 생쥐를 화끈하게 죽이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아들 민홍이에게 연탄집게를 달궈오라 한 뒤 살타는 냄새가 피어오르도록 불로 지져 죽였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아버지가 갑자기 폐암으로 돌아간 것이다.

어버지의 쥐잡기는 평생 헛것 같은 운명에 휩쓸려 살던 그에게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현실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또한 이번에는 어느 날 집에서 소일하던 운동권 출신 민홍이에게 어머니 철원네는 가게에 나타난 쥐를 잡으라고 종용한다. 민홍은 큰마음 먹고 그 쥐를 잡으려고 했으나 거의 죽어가는 형상으로 위장한 늙은 쥐의 약은 행동에 속아 놓치고 만다.

「그놈, 바로 철원네가 입버릇처럼 뇌던 그놈이 아주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가게 문턱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철원네가 말한 용모파기와 일치했다.(……) 녀석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손을 가만히 내려 냉장고 옆에 세워둔 연탄집게를 들어올렸다.(……) 민홍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황급히 뒤쫓아 나갔지만 허사였다. 녀석의 굼뜬 동작은 괜히 상대방을 자만하게 만들기 위한 위장술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것은 등허리의 털이 벗겨질 만큼 오랫동안 목숨을 부지하면서 터득한 경험과 새끼를 밴 암컷의 빈틈없고 대담한 산술이었으리라. 녀석은 문턱에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람쥐보다 더 민첩한 동작으로 사라지고 말았다.(……)민홍은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우두망찰 서서 소리없이 웃고 있는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
-모르지, 맹탕 헷것이 눈에 보였는지두. 아버지의 늘쩡한 목소리가 귓전에 와 달라붙었다.」

막상 쥐잡기에 실패한 민홍은 무기력한 아버지에 대해 처음에는 거부감도 갖고 있었으나 쥐잡기에 고심하던 아버지를 새삼 이해하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을 갖게 된다.

결국 작가는 거제도포로수용소 석방포로인 아버지에게서는 경제적으로 무능하여 어머니에게 구박을 당하며 역사의 그늘 밑에서 무기력하고 왜소하게 구멍가게를 지키는 초라한 모습을, 민홍의 어머니 철원네에게서는 악착스럽게 살아가는 것만이 의미있는 것임을 드러내는 강인한 생활인으로서의 억척어멈의 모습을, 또한 이들을 지켜본 아들 민홍은 악다구니의 모습으로 부각되는 어머니를 철원네라고 부르는가 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와 운명 앞에 휘둘린 아버지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거부감을 갖고 있었으나 쥐잡기라는 사소한 모티브를 통해 그를 새롭게 이해함으로써 연민과 그리움의 시선으로 다가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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