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표 거제수필 회원

지금 우리는 21세기 그 풍성함 속에서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아낌없이 누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세상에서는 가난과 결핍의 아우성이다. 가난 때문에 삶을 포기하거나 절망에 빠져간다. 한편에서는 오히려 풍요가 삶을 멍들게 하고 절망에 빠지게 한다.

양극화의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같다. 양쪽의 끝이 너무 멀다. 그래서 서로를 모른다. 잘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있어서 병들고 없어서 병들어 가는 희한한 세상이다. 가난이 살인 무기로 돌변하기도 한다. 가난은 이런 의미에서 저주이기도 하며 인류가 공동으로 막아야 할 재앙이기도 하다.

가난이 주는 고통을 우리는 무수히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눈물과 함께 빵을 먹어 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맛을 모른다’고 위로하며 가난을 극복하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보내기도 한다. 죽어도 가난이 싫은 사람들이다. 가난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마음대로 안 될 때가 있다. 가난의 굴레가 얼마나 강한지 그 굴레를 벗어나려면 수십 배, 수백 배의 눈물과 땀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전에 아니 부자가 되기 전에, 먼저 마음이 가난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듣기가 어떨지는 몰라도 물질의 가난을 벗어나려면 마음부터 가난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가난의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본다. 물질이 가난하다는 의미와 마음이 가나하다는 의미로 말이다. 우리 모두는 물질적으로 가난해지고 싶지 않다. 같은 값이면 부유하게 살고 싶어 한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다른 목숨을 죽이기도 하는 끔직한 세상이다. 그 이유 때문에 부모자식이 원수가 되고 부부가 등 돌리고 형제가 칼부림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영촌 일촌지간이 이럴진대 남남이면 어떻겠는가.

이렇게 해서 우리 사회는 점점 희망의 등불을 잃어가고 병들어 가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헤쳐 나가야겠는가. 이 모두 마음이 가난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나는 보고 있다.

세계적인 성녀 마더 테레사는 ‘나누면 남는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는데 어디서 이런 생각을 끄집어냈을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생각이 난다. 이것을 사용하여 남자 5천 명을 먹이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치면 무릇 1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에게 배불리 먹게 하고 12광주리가 남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나누는 데서 기적이 일어난 셈이다.

그랬다. 2천 년 전 갈릴리 바닷가에 있었던 이 보잘것없는 오병이어가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 수천만인의 가슴속에 ‘나눔’이 어떤 것이며 ‘마음이 가난함’이 어떤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적은 것을 나누어 주니 큰 것이 남았다. 나는 이 기적의 사건은 이 시대에도 그 원리가 적용된다고 보는 사람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의 복은 ‘하늘나라를 가지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천국으로 바꾸려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먼저 필요하다. 물질이 너무 많아서 생기는 이 시대병(時代病)을 고칠 약은 오히려 ‘가난한 마음’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마음은 이 시대의 대안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적은 것에도 많은 것에도, 좋은 것에도 싫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또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마음이 단순하다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하는, 내가 하고픈, 내가 갖고 싶은 것으로부터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가진 게 별로 없는 마음, 붙들어 매어놓은 것 없어 자유로운 마음이다.

그래서 소유(所有)하는 것보다 존재(存在)하는 것에 더 가치를 주는 그런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보이는 현상에 목매지 않고 안 보이는 본질에 마음을 쓰는 것 이것이 ‘가난한 마음’이다.

너무 넘쳐나서 방향을 잃은 세대, 그늘진 곳을 외면한 채 화려한 모습만이 대접받는 세대, 지니고 있는 물질의 양에 따라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대, 이런 세대에 주는 인생테마를 나는 ‘마음의 가난함’이라고 본다.

‘깨끗한 부(富)’를 갖는 사람을 존경하자, 그는 반드시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리라. 우리, 물질의 가난을 뛰어넘어 절대 가난해지지 말자. 그러나 한 가지,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 이것만은 죽어도 잊지 말자고 시월종야(十月終夜)에 다짐 또 다짐해 본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넉넉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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