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호 창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소설 말미 ‘충무공 연보’에서 작가는 이분의 『행록』에 나타난 역사적 기록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그날 공은 적탄을 맞았다.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내렸다…. 2차 출정 때는 사천 당포 당황포 율포에서 적선 70여척을 부수었다.(…) 율포는 거제군 동부면과 남부면 사이의 오목한 바다이다.”

한편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첫 전투는 거제 옥포만 해전이었다.

1592년 5월7일 벌어진 거제 옥포만 전투는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이었고, 최초의 승전이었다. 따라서 임진왜란의 해전을 역사적 연대기에 따라 구성해 나간다면 제일 먼저 나와야 할 전투 장면일테지만 작가는 역사적 연대기에 따라 소설 속의 사건을 구성하지 않고 과거의 회상 형식을 빌어 소설을 들쭉날쭉 꾸려간다.

이는 작가의 계획된 의도이자 김훈의 역사소설이 갖는 미학이기도 하다. 이는 마치 소설의 주인공 이순신이 임진왜란에 대한 과거회상을 들쭉날쭉 하는 것처럼 진행된다.

「나는 임진년 5월4일 새벽에 여수 전라 좌수영에서 판옥선 24척으로 발진했다. 협선 15척과 어선 46척이 뒤따랐다. 기나긴 전쟁의 시작이었다.(…) 거제도 동쪽 옥포만 어귀에서 척후장이 불화살을 올렸다. ‘적 발견’이었다. 내 함대는 옥포만 외항에 있었다. 나는 함대를 만 어귀로 몰아갔다. (…)(옥포만에) 상륙해 있던 적병들이 내 함대를 발견하고 배 안으로 뛰어들어 전투 위치에 정렬했다. 나는 이동 대열을 전투 대열로 바꾸었다. 함대는 적의 선착장을 방사 대열로 포위했다. 적들은 대부분 발선하지 못하고 선착장에서 깨어졌다. 발선한 적선 몇 척이 빠르게 내 함대의 양쪽을 우회했다. 우회한 적들은 수로의 어귀 쪽으로 나아갔다. 좁은 물목을 막아 내 함대를 만 안에 가두어놓고 부수려는 작전이었다. 돌격선과 적선이 교전하는 동안 본대를 만 밖으로 물렸다. 돌격선은 적선에 무수한 불화살을 박아놓고 만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해전이었다.」

이상이 작중인물인 ‘나’ 즉 이순신의 눈으로 바라본 옥포해전의 전체 묘사이다.

② 「칼의 노래」와 율포 해전 그리고 옥포만 해전(앞에서 계속)

소설책 말미의 ‘충무공 연보’에서 작가는 옥포만 전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옥포만 전투는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이었고, 최초의 승전이었다. 이순신과 수군 장졸들은 해전 경험이 없었다. 적을 향해 돌격할 때 이순신은 실전 경험이 없는 장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경거망동하지 마라. 너희는 태산과 같이 진중하라.
옥포만 전투는 임진년에 벌어진 여러 해전의 전형적인 모델을 이룬다. 한 번의 출전에서 여러 포구를 돌며 적을 소탕하는 싸움의 스타일, 그리고 적의 포진에 관해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없이 연안을 광범위하게 수색해서 적을 찾아내 소탕하는 싸움의 방식이 그것이다. 이 수색섬멸전은 임진년의 여러 전투에 적용되었던 이순신 함대의 기본 전술이었다.”

이순신이 참가한 전투의 시작과 첫 승리가 거제의 옥포만에서 이루어진 반면 최후의 승리와 그의 죽음은 노량해전에서였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이순신에 관한 이야기 때마다 들어왔던 장군의 마지막 전투의 극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갑자기 왼쪽 가슴이 무거웠다. 나는 장대 바닥에 쓰러졌다. 군관 송희립이 방패로 내 앞을 가렸다. 송희립은 나를 선실 안으로 옮겼다. 고통은 오래 전부터 내 몸 속에서 살아왔던 것처럼 전신에 퍼져나갔다. 나는 졸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다가오는 죽음을 느꼈다. - 지금 싸움이 한창이다. 너는 내 죽었다는 말을 내지 말라. 내 갑옷을 벗기면서 송희립은 울었다.(…) 팔다리가 내 마음에서 멀어졌다. 몸은 희미했고 몸은 멀었고, 몸은 통제되지 않았다. - 북을… 계속… 울려라. 관음포……멀었느냐? 송희립은 갑옷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북을 울렸다.」

관음포는 남해섬에 있는 포구이다. 해전의 장수로서, 적탄을 맞고 고통과 다가오는 죽음을 느끼면서도 이순신은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명령을 부하 송희립에게 내렸고, 죽음을 앞두고 전투의 목적지를 향해 돌진하기를 독려하는 의연한 맹장의 모습에 부하 송희립은 눈물을 닦으며 독전의 북을 울리고 있다.

손자병법도 말하듯이 북소리가 곧 장수의 명령이었다. 이 광경이 어찌 감동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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