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 수필가/시인
이은영 수필가/시인

큐티는 언니네 집에 살고 있는 애완견이다. 시추 종으로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아 올해 초부터 키우게 되었다. 온 몸이 점박이 투성이다. 심지어 배에도 있다.

어린 시절 집에서 개를 키웠기에 언니와 나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토종개를 보면 그냥 스치지 않고 발이라도 한번 잡아본다. 비록 토종개는 아니지만 언니네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게 되어 좋았다. 언니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뛰어나와 반겨준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커가고 있다.

일곱 달쯤 지나자 그 식성 때문인지 웬만한 잡종견마냥 커가고 있었다. 한두 뼘만 하던 것이 다섯 뼘은 됨직했다. 강아지가 집에 온 이후로 언니의 얘기 절반은 강아지 차지가 되었다. 외출을 하면 아이들 밥걱정보다 강아지 걱정부터 앞선다고 하니 강아지에 대한 언니의 사랑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 그렇다고 헤어짐이 두려워 만남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은 느닷없이 와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비켜 갈 수 없는 선택 앞에서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사정상 조카가 다니는 학원에 강아지를 보내야 했다. 강아지와 관련된 모든 물건들을 버리고 그 학원에는 일부러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강아지 짖는 소리가 집에까지 들려왔다는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언니 집과 학원은 5분 거리에 있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언니에게 그 약은 너무 쓴 듯했다.

일요일 낮, 언니네 집에 갔다. 아마도 강아지를 보내고 열흘쯤 되었을 게다. 언니는 내게 넌지시 말했다. 이제 시간이 흘렀으니 한번 보러 가자고. 언니의 손에는 부드러운 빵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큐티야, 큐티야"

몇 번을 불러도 안은 잠잠했고 어떤 기척도 없었다. 구멍사이로 빵만 던져주고 돌아 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맹렬히 들려왔다. 따뜻한 햇볕에 배를 깔고 낮잠이라도 자다가 깬 모양이다. 언니는 구멍사이로 어쩌지도 못하고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이미 눈은 붉어지고 있었다. 강아지 역시 두꺼운 철재 샷시 앞에서 왔다갔다만 했다. 옛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나 보다.

그때, 스르륵 샷시문이 올라갔다. 강아지도 날뛴다. 언니는 머리, 등, 발 온몸을 만지며 여기저기를 살핀다. 언니는 강아지가 반쪽이 됐다며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점이 짙어졌어, 점이 짙어졌어."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언니는 눈시울을 붉힌 채 안 볼 걸 그랬다고 나지막이 말했다.

"근데 언니, 점이 짙어졌다가 무슨 말이야?"

알 듯, 모를 듯한 말이 궁금했다. 배에 있던 점들이 살이 쪄서 팽창해 있을 땐 옅었었는데 살이 빠지면서 점 색깔이 짙어졌다고, 바람 빠진 풍선의 그림이 짙어지는 것처럼.

나에겐 보이지 않던 것이 언니 눈에는 보였던 것이다. 나는 그저 야위었구나만 생각했을 뿐인데 비록 동물이지만 언니는 강아지를 온 몸으로 껴안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점의 색깔은 의미 없는 것에 불과하지만 언니에게는 아픔으로 다가온 것이다.

사랑은 크고 위대하다지만 그것을 느끼는 것은 결코 큰 것에서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가까운 사이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알지 못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변화를 넘어 자신도 몰랐던 것을 봐주는 이가 있다면 이미 사랑은 충만한 것인지 모른다. 강아지 큐티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언니 마음속 이별의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랐다. 그 바람 속으로 언니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살며시 번져 온다.

"점이 짙어졌어, 점이 짙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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