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 장목면 '장목진 객사' 안내판에는 '이순신 장군과 이영남 장군이 거제 옥포해전과 칠천량해전의 전략을 세웠던 장소'라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장목진 객사가 임진년에 지어졌다는 상량문 내용을 잘못 해석하면서 생긴 오류로 보인다.

실제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장목지역은 왜군의 주요 집결지 및 주둔지였고 이 지역을 조선군이 점령한 사실에 대한 기록은 없다. 장목진 설치와 관련된 기사는 현종 2년(1661년) 장목 만호 임명 기사(이후 한동안 만호가 아닌 별장이 근무), 숙종 46년(1720년) 이정현을 장목포만호로 삼았다는 기록이다.

또 여지도서(1757~1765)와 영조실록에는 1751년 민백상이 각진의 혁파에 대해 논하면서 장목포진을 비롯해 거제(巨濟)의 조라(助羅)·옥포(玉浦)·지세(知世)·율포(栗浦)·소비포(所非浦)·가배량(加背梁) 7진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지금의 거제 7진에 대한 인식은 이때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거제지역의 수군진은 조선초기부터 일본 및 왜구의 대외 정책에 따라 지속적으로 이진(移鎭)·재설진(再設鎭)·폐진(廢鎭) 되는 등 변화를 겪으면서 수군진의 숫자도 늘거나 줄기도 했다.

장목진의 객사에 대한 기록은 숙종19년(1712년) 동구에 건립했던 것을 정조9년(1785) 서구로 옮겼다고 한다. 현재의 장목진 객사는 순조2년(1802)에 다시 중수한 건물로 1981~1982년에 해체해 보수한 것으로 돼 있다. 장목진 객사는 조선시대 통제영 관할 경상우수영의 7개 진영 중 하나였던 장목진의 부속 건물로 알려졌다.

객사는 고을 관아에 출장온 관원이나 고을을 찾은 중요한 손님들이 묵는 숙소이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던 곳이다. 지역에서 객사는 왕의 통치권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었으며, 고을 수령과 관리들은 객사에서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행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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