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수필가
김지영 수필가

꽃이 흔들리고 있다.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는 것인지 내 마음이 꽃잎에 흔들리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5월의 많은 꽃들 가운데서도 유독 이팝나무가 눈에 밟힌다. 이팝나무 꽃은 가엾은 며느리의 한이 하얀 쌀밥 꽃으로 피어났다니 애처롭기 그지없다.

그녀는 이팝꽃을 좋아했다. 어쩌다 함께 걷다가도 이팝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더뎌지는 걸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눈은 오랫동안 하얀꽃에 붙들려 있곤 했다. 그럴 때 언니의 눈은 가늘게 떨리면서 흔들리기까지 했다. 가로수길에 흔히 보이는 꽃이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하얀 꽃잎이 팝콘처럼 예쁜 꽃이구나 생각했었다. 언니를 만나기 전에는.

언니와 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사이였다. 언제나 조용히 할 일만 하는 언니를 보며 유난히 말 수가 적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니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서 한동안 당혹스러웠다. 그런 언니에게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반응이 느리다고 짜증을 부린 것도, 말을 못 알아 듣는다고 내심 불평하면서 그저 건조한 눈인사로 안부를 물었던 일이 미안하기만 했다.

속 깊은 얘기는 하지도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동안 나는 건강한 내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언니를 대했으니 얼마나 이기적이었는가?

언니와 나 사이를 이어준 것은 휴대폰이었다. 음성의 청각이 아니라 느리긴 하지만 시각의 청각으로 의사소통에 큰 불편이 없어지고 수다 삼매경에 빠지는 재미를 가졌다. 어쩌다 한 번씩 엉뚱한 단어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지만, 그건 기계 탓일 뿐이고 소통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음이 통하니 글자가 맞고 틀리고는 대수가 아니었다.

때마침 우리가 하던 일은 업무상으로는 청각적 능력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시각과 예리한 촉각이면 충분했다. 언어는 오히려 일할 때 거치적거림을 줄 뿐이었다. 간혹 회의시간의 안건이 언니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싶으면 나는 핸드폰으로 다시 상세하게 설명해 주면 그것으로 족했다. 가끔 침묵하는 것이 오히려 평온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말 한마디보다 두 손을 맞잡고 반가움을 표하고, 헤어질 때는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포옹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다보니 우리 두 사람의 정은 더 깊어졌다.

언니가 살았던 옛날 고향마을에는 큰 이팝나무가 있었다고 했다. 분명 그 말 속에는 말할 수 없는 유년의 아픔 같은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이팝꽃처럼 애틋한 언니가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마음 한 쪽이 아리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어 웬만한 일에는 그저 무덤덤해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도 언니와의 이별만은 그렇지 못했다.

그 이별이 하필이면 이팝꽃이 만발한 지금이라 마음이 더 휑해진다. 나보다 떠나는 언니의 마음이 몇 배 더 불편하고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안가면 안 되느냐고 보채보고 떼를 써 보기도 했다. 늘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 수련회에서 함께 찍은 사진처럼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예고 없는 이별로 헛헛한 마음만 가득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어디 가서라도 언니의 따뜻한 가슴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게 틀림없다. 혹시라도 신체적 장애를 가진 것이 삶의 장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일로 흔들리거나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만남과 이별이야 흔한 일이라지만 애틋한 만남과 이별은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해마다 이팝꽃이 필 무렵이면 언니가 더 그리워질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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