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목고분군 비늘갑옷(찰갑).
장목고분군 비늘갑옷(찰갑).

기원전 1~2세기부터 중국의 동북부-한반도 서부-남해안-일본 규슈지역이 활발히 교류했다는 것은 다양한 유적을 통해 알려지고 있었으나 그동안 거제지역과 관련된 자료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거제시 아주동 지역 집자리에서 일본 고훈시대(古墳時代·3세기 중반부터 7세기 말까지의 약 400년) 토기인 하지키계 토기가 발견됐고 이어 농소리고분군과 유물이 발견되면서 이 시기 일본과 거제도의 교류 흔적을 엿볼 수 있게 됐다.

농소리고분 석실 내외부에서 발견된 원통형토기와 철모(철제 창)·삼지창의 경우 의례 흔적으로 보인다. 이는 일본 후쿠오카의 반즈카 고분에서 발견된 철도자(작은 쇠칼)과 같은 형태로 묻혀있었다.

일본과 국내 학계에 따르면 농소리 고분의 주인은 고분축조의 연속성·고분의 외형·매장시설·부장유물의 상관관계에 따라 기존 남해안 일대에서 발견된 정주왜인이나 재지수장층의 고분과 달리 일본 큐슈지역 출신의 무장세력 왜인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 왜가 한반도에 군사적 목적으로 진출한 주요사건은 모두 3차례로, 첫째는 5세기초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된 가야와 왜 동맹군의 신라 공격, 두번째는 6세기 중반 백제의 중흥을 꿈꿨던 성왕이 전사한 관산성 전투, 세번째는 7세기 백제가 멸망한 후 왜가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한 백마강전투다.

농소리 고분군의 고분의 축조 시기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중엽까지 추측돼 무덤의 주인은 백제 성왕 및 대가야와 교류했던 세력으로 추측된다.

고분군에서 발견된 대가야산 공부단면 팔각형 철모와 백제산 대장식구가 무덤의 주인이 백제와 관련이 깊은 인물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고분에서 일본 열도산 경갑과 찰갑(사진·비늘갑옷) 등 갑주와 대도·철모·철촉과 같은 무기가 발견된 것은 무덤의 주인이 백제와 왜와의 교섭에서 군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