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를 건국한 유방(劉邦)은 진나라에 이어 천하를 두 번째로 통일한 인물이지만 젊어서는 바람기 많고 주색잡기에 능한 난봉꾼에 백수건달이었다. 서른 즈음 고향 패현에서 하급관리인 정장(亭長)이 되었다. 당시 지방유지로 상당한 권력자였던 여공(呂公)이 유방의 관상이 비범함을 보고 자기 딸 치(雉)와 혼인시켰다. 이때 이미 유방은 결혼하여 부인까지 있었다.

동네 패거리 대장이 되어 싸움이나 일삼던 부랑아 유방이 황제의 자리를 꿰찰 때까지에는 여치의 내조가 컸다. 유방이 황제로 등극하자 여치는 첫 부인을 누르고 태후가 된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중국 역사상 3대 악녀의 하나로 손꼽히는 여태후(呂太后)다.

황제의 자리를 두고 다투었던 초나라 항우(項羽)는 전쟁 속에서도 우(虞)라는 여인을 사랑하여 마침내 죽음까지도 함께했던 러브스토리가 경극 패왕별희(霸王別戱)로 후대까지 남았지만, 유방은 타고난 난봉꾼의 기질로 많은 후궁들 속에 싸여 지냈다. 그 중에서도 미인 척희(戚姬)라는 여인을 총애했다. 척희는 유방의 총애를 빌미로 이미 태자로 낙점되어 있던 여태후의 아들 유영을 폐하고 자기 아들 여의를 내세우려다 실패한다. 이 일로 여태후의 분노와 척희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유방이 죽자 여태후의 복수가 시작된다. 제후로 나가 있던 척희의 아들 여의를 궁으로 불러들여 독살했고, 이어 척희는 삭발 당한 채 하루 종일 연자를 돌리며 곡식을 찧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자 척희의 손발을 자르고, 인두로 눈을 뽑고, 유황으로 귀를 태우고, 말을 못하게 혀를 뽑아 버렸다. 심지어 흉악한 죄수들이 있는 옥에 넣어 윤간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드디어는 척희를 돼지우리 속에 넣고 돼지의 똥오줌을 받아먹게 했다. ‘인간돼지(人彘:인체)’라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

며칠 전 중국에서는 자기 부인을 돼지우리에서 자게하고 쓰레기를 먹게 하는 등 인간돼지로 학대한 남편에게 징역 18개월이 처해졌다고 홍콩신문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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