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 그리고 거제도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 그리고 거제도
  • 김무영 시인
  • 승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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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넘다든 피난민들을 가족처럼 받아 준 거제인의 동포애
김무영 시인
김무영 시인

한국동란이 발생한지도 70여년이 지났다. 당시 피난길에 몸을 실었던 동포들도 다 고희를 넘기고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하지만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17만4000명을 수용한 거제도포로수용소·인천상륙작전·낙동강 방어선이었던 다부동전투와 함께 한국동란의 3대 전투인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그리고 피난민들을 가족으로 품에 안은 거제인의 인류애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장진호는 개마고원과 연결된 해발 2000고지에 육박하는 산악지대로 장진강을 막아 동해로 흐르는 성천강의 지류인 흑림천 계곡으로 떨어뜨려 장진강발전소를 가동시키고 있는 인공호수다. 이곳은 동절기 때는 영하 30~4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지역이었다. 이 지역을 통해 연합군은 북진을 시도했으나 수십만에 달하는 중공군에 의해 후퇴했고, 중공군을 지연작전으로 이끌어 피난민을 구출하는 작전이 시작된다. 이 시기 스미스 장군과 장병들은 중공군과 끝까지 싸워 방어선을 쳐 아군과 난민을 구하고 피난길에 들게 한다.

피난민을 싣고 갈 화물선 메르디스 빅토리호에 ‘선적한 화물을 다 던져버리고 단 한명의 난민도 구하라’는 라투 선장의 명령이 하달된다. 피난선에 몸을 싣기 위해 매달리다 바다에 떨어지고 살려달라는 아우성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다. 800명 정원인 이 화물선에 1만4000명의 피난민이 몸을 실었다.

이날이 크리스마스 이브날인 1950년 12월24일이다. 빅토리호에 오른 피난민들은 암흑천지의 바다를 지나는 동안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숨죽이며 밤을 새웠다. 피난선에서 아이가 5명이나 태어났다. 그러니까 피난선에 탄 인원은 1만4005명이 된 샘이다. 이 아이들의 이름을 김치1에서 5까지 차례로 붙어 불렀다.

이 피난선 메르디스 빅토리호가 도착한 곳은 거제도 장승포 앞바다였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새벽에 피난선이 장승포 외항에 도착해 크리스마스 기적이라고 불렀다. 도착하자 주민들은 어선으로 피난민을 실어 날랐다. 이 피난민들을 이운면(당시 장승포·능포·아주·옥포 지역), 일운면(지금의 일운면·고현 지역), 연초·하청·장목·동부·거제면 등지 각 가정으로 1가구에서 3·4가구까지 분산 배치했다. 각각의 가정에서는 마치 가족이 먼 길을 떠나 무사히 집에 온 것처럼 따뜻하게 맞았다. 가장 힘들고 어려워 암울한 때 거제인들은 동포애로 그들을 대했던 거다.

이 피난민들은 일정기간 머물다 부산·서울 등지로 떠났다. 거제에서는 신부시장에서, 부산에서는 국제시장에서, 서울에서는 남대문시장에서 주로 행상과 노점으로 연명하다가 삶의 터전을 잡아 갔다.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 중에는 대한민국의 경제에 크나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자들이 많다. 물론 정계학계에서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거제에는 17만명에 이르는 포로와 15만여명의 피난민들이 한국동란 당시 거제에서 살았다. 이들이 기억하고 있는 거제에 대한 추억은 색다르다. 생사를 오르내리는 가장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함께 추억하는 일이 필요하다.

특히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작전·피난선, 그리고 피난민을 가족 같이 받아준 거제인의 어머니 같은 사랑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그 당시를 잊지 못하고 고향을 그릴까. 70년이 지났다. 그들이 타고 온 매르디스 빅토리호를 만들어 당시 아슬아슬했던 삶의 애한을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함경도 어디 고향마을도 조성해 잠시나마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이런 작업은 왜 할 수 없었을까.

장진호전투의 흔적들, 피난길에 오르기까지, 피난선의 장면들, 장승포항에 도착해 거제 곳곳의 각 가정으로 떠나는 행렬의 모습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기록관을 만들고, 각처로 흩어져 있는 피난민을 추억하는 일을 왜 아직도 망설이고 있을까. 피난민과 그 자손들이 각계각층에서 터전을 잡고 위치에 있는 이들은 큰 자산인데도 말이다.

자신들이 살던 곳, 거제인의 사랑을 그 자녀들로 이어지게 하고, 그 흔적들을 되새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피난 당시 거제인이 보여준 사랑이 되살아나 지금은 그들이 거제인을 더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의 힘은 전이돼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희망과 용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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