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혜량 시인/수필가
고혜량 시인/수필가

4월의 외포항. 멸치잡이 어선이 선창으로 들어오자 흩어져 있던 갈매기들이 일사불란하게 배 위로 모여 들더니 빙빙 원을 그리며 날고 있다. 선창에 배를 대자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가 더욱 요란해진다. 갈매기들만 바쁜 것이 아니라 작은 어촌 항구가 수런수런 살아나기 시작한다. 비릿한 갯내음이 코를 찌른다. 꼭 이맘때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외포항의 멸치털이 장면이었다.

밤새 바다에 쳐 놓았던 그물에 멸치가 걸린 그대로 건져와 선창에서 털어내는 작업이 시작된다. 건장한 장정들이 투박한 구령소리와 함께 그물을 느슨하게 주었다가 힘껏 당기면서 후려치면 그물코에 걸려 있던 멸치가 우루루 저만치로 떨어져 나간다.

"어여차~ 어여차."

고된 노동과 질곡한 삶의 애환이 그대로 느껴지는 소리다. 빠르거나 느리지 않고, 높거나 낮지도 않고, 길거나 짧지 않는 음정으로 맞추어 메기는 소리가 조용했던 바닷가를 흔들어 놓고 있다. 그물을 벗어난 멸치들이 위로 솟구쳤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마치 은빛가루가 사방으로 흩어져 내리는 듯하다. 하늘도 바다도 온통 은빛으로 출렁이고 있다. 그물 속에서 떨어져 나온 싱싱한 멸치는 바다 속에 깔아 놓은 큰 그물 속으로 떨어진다.

눈치 빠른 갈매기가 하늘을 빙빙 돌다 튀어 오르는 멸치를 잽싸게 낚아챈다. 그 솜씨 또한 재빠르기 그지없다. 저만치서 웅크리고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길냥이들은 아직은 자기들의 순서가 아니라는 듯 물끄러미 입맛만 다시고 있다. 작업이 끝나고 나면 깨끗하게 뒷정리를 할테지만 길냥이들을 위해 일부러 조금씩 남겨놓은 멸치는 자기들의 몫이 될 것이다.

어디 갈매기와 길냥이 뿐이랴. 이제는 조금 전부터 양동이를 들고 서성거리던 아주머니들이 등장한다. 그물을 터는 아저씨들이 간헐적으로 한번씩 멸치를 바깥으로 툭 쳐낸다. 그러면 아주머니들 몇이 땅바닥에 떨어진 멸치를 양동이에 주워 담는다.

살다보니 멸치를 말리는 풍경이야 더러 보아왔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일이라 신기하고 재밌다. 멸치를 주워 담던 아주머니들은 이 정도면 되었다 싶었는지 더 이상 욕심내지 않고 한 사람씩 자리를 떴다.

한 때는 입가에 붙은 보리밥풀 하나도 아까워서 떼어버리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먹지 못해 허옇게 버짐 핀 얼굴의 사람들. 하루하루를 묵묵히 살아낸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 있었다. 더구나 꽉 찬 4월이면 보릿고개가 목에 찰만큼 배고픈 시기였다. 다행이 멸치를 터는 이때쯤이면 양동이 하나 달랑 들고 선창으로 나오면 아저씨들이 마치 실수한 것처럼 멸치를 일부러 바깥으로 쳐내 주었으니 눈물겹도록 따뜻한 인정이었다. 어쩌면 준다고 우쭐거리지 않고 주워 간다고 미안해하지 않으면서도 나눌 수 있는 깊은 마음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 시절 대부분 사람들이 보리죽으로 애오라지 허기진 뱃속을 달래면서도 이웃을 돌아보았던 마음바탕이 아직도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아 있다. 바닥에 떨어지는 멸치를 헐거운 눈으로 모르는 척 눈감아 줬던 선주.

티나지 않게 일부러 슬그머니 바닥에 떨어지도록 했던 뱃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씨. 그런 속정 깊은 마음들이 모여 지독히도 가난했던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한 버팀목이 돼줬는지 모른다.

자기의 형편대로 등을 내어줄 줄 아는 사람들. 같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상대를 위해 내어준 나의 등이 결국은 너와 나 서로를 기대게 해주었고, 가난했던 어려운 시절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참 따사로운 봄날이다. 싱싱한 멸치회를 상추에 싸서 눈을 부라리며 먹을 생각을 하니 4월의 봄 햇살이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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