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거제시청 주무관
박소영 거제시청 주무관

한국전쟁중이었던 1950년 12월,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진 미군과 한국군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선박으로 철수한다. 당시 흥남항에는 중공군을 피해 10만명에 가까운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한국군은 미군을 설득해 무기와 장비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들을 배에 태운다. 흥남에서는 12월15일부터 철수작전이 시작돼 23일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배인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정원이 60명에 불과한 군함이었지만, 무려 1만4000명의 피난민을 싣고 흥남을 떠났다. 그리고 2박3일간의 항해 끝인 12월25일, 기적처럼 거제 장승포항에 닿게 된다. 장승포 주민들은 고된 여정으로 지친 이들에게 집에서 지어온 주먹밥을 나눠주고, 한켠의 보금자리도 내어주며 함께 새로운 터전을 가꿔 나갔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흥남철수작전과 장승포 피란민들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70여년. 장승포는 또 한 번의 기적을 맞이하게 된다. 최근 장승포 마을에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이뤄냈던 그들의 여정과 발자취, 주민들의 따뜻한 온정을 녹인 '기적의길'이 놓였다. 기적의길 조성은 장승포 도시재생뉴딜의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중 하나로, 인문학적 분야의 골목 활성화 사업이다. '1만4000명 피란살이 장승포 휴먼다큐인(人)'를 주제로 사람 기반의 도시, 따스한 마을공동체를 적극 이미지화 했다.

주민들은 마을의 역사적 사실을 스토리텔링하고, 골목 구석구석 이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했으며, 자신들의 집 담장을 내어 벽화를 그렸다. 방문객을 위해 곳곳에 쉼터를 설치하고, 마을 주변도 깨끗하게 정비했다. 가슴 아픈 6.25 전쟁의 역사와 그 속에서 피어난 삶의 희망은 그렇게 '도시재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누구에게나 100% 만족을 줄 수는 없지만 노력한 흔적들이 여실히 보인다.

도시재생은 현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채택하면서 흔하게 들어본 말이 됐으나, 정확히 도시재생이란 어떤 것인지를 깊이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다. 어디가 도시재생 공모에 선정돼 앞으로 발전할 것이라든지, 건물이 들어서고 인프라가 좋아져 땅값이 오를 것이라든지, 대부분은 이런 단편적인 생각만을 갖기 마련이다.

도시재생은 지역의 특색 있는 자원을 활용해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도시를 활성화하는 사업을 말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도시재생은 행정이 아니라 주민이 주도하는 사업이라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중심은 바로 '주민'이며, 사업의 최종 목표 역시 주민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모든 도시재생 전략계획 및 활성화계획은 주민의견 수렴을 거쳐 수립된다. 이후 주민협의체 구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전에 주민과 소통하고 주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활동을 통해 사업을 추진한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주인공인 주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사업의 성공은 장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도시재생은 재건축·재개발에 비해 조금 더 인간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주민들이 스스로 자기가 살고 싶은 마을을 디자인하고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 꼭 대단한 건물을 짓지 않아도 가지고 있는 자원을 다듬고 재해석해 마을만의 특화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 그로 인해 도시가 다시 활력을 찾고 살고 싶은 마을로 거듭나는 것. 무엇보다 도시재생이 매력적인 이유는 마을에서 기존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고스란히 남기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일일 것이다.

기적의 길이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장승포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덩달아 마을 주변이 새로운 활기를 띠고, 주민들의 얼굴에도 평온한 미소가 번진다. 장승포 마을의 행복한 변화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도시재생으로 피어난 기적의 길이 장승포를 찾은 두 번째 기적임은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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