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김형곤 거제제일교회 목사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다. "날씨가 추운데 꽃은 피더라." 사람들은 춥다고 아직 움추리고 있는데 꽃은 피어나고 있다. 움추리고 있는 것은 인간의 행위이고 꽃을 피우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하나님의 작품인 것이다.

사람들은 지난 겨울 추위와 함께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면에서 힘들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4월의 봄을 몹시 기다렸다. 겨우내 간직했던 꿈들이 피어나듯 수선화는 이미 피어서 오래도록 그 노란 꿈을 펼치고 있다. 하얀 꿈의 목련은 만발해 봄에 풍성함을 보여준다. 개나리도 노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내밀고 진달래가 피어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 "세상이 환해졌다. 정말 좋은 날씨다. 볼 것이 많아졌다"고 한다. 그동안 어디 있다가 이렇게 나타났을까? 온 세상의 나무들이 움을 트이고 가지마다 색깔로 꽃을 피우는 저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해서 칙칙하던 겨울이 이렇게 환한 세상으로 바뀌어 갈까?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가졌던 모든 열매를 다 떨어뜨리고 자신들이 입고 있던 모든 잎파리들을 다 떨어트리고 죽었기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성취한 그 어떤 것도 가지지 않는다. 열매도 잎도 다 버렸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고 잎이 그렇게 푸르르게 덮여 있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그것들을 여름에 아니면 가을에 다 날려버린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 강제로 그랬던지, 아니면 스스로 그랬던지 그들은 다 버렸기에 이 봄을 맞이할 수 있다. 마치 예수 부활의 모습을 자연 세계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때 찾아오는 하늘과 땅의 은총,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았다'는 그 일체 좋음의 세계 안에 그분의 뜻을 헤아려 본다.

그러나 정작 봄은 왔는데 우리는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다. 세월의 풍파를 겪고 사셨던 부모님과 같은 어르신들과 장터의 이웃 어른들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상황이다. 행여나 기대하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답답한 마스크로 얼굴 부분을 가리고 엘리베이트 속 밀폐된 공간 속에서 혹여 감염될까 싶어 마스크를 다시 고쳐 써보는 모습에서 봄은 아직 멀리 있는 마음의 세계이다. 4월의 봄기운을 느끼며 마스크를 던져 버리고 긴 숨을 쉬어야 할 때, 유아들에게까지 마스크를 씌우는 우리의 손이 왠지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그렇지만 봄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봄의 속성을 생각해 본다. 동트기 전 새벽이 더 깊듯이 봄이 오기 전 겨울이 있었음을 자연은 우리를 깨우친다.

토마스 칼라일이 '역경을 견뎌내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번영을 견뎌내는 사람은 한 명에 불과하다'고 했던 말처럼 지난날 상상도 못할 정도로 풍요로움을 누렸던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시대를 살아가면서 아직도 적응하기 힘든 모습이 일상이다. 평안함을 불안함으로 하는 주범이 계절이 바뀌어도 쓴 뿌리처럼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그런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환경을 바꾸려 하지 말고 차라리 나를 바꾸면 어떨까? 내 사고방식을 바꾸고, 내 자세를 바꾸고, 내 삶의 방식을 바꾸는 편이 내게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인간의 불행과 행복의 차이는, 생각과 기준의 뿌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실제로 행복하려면, 우리의 생각과 세상적인 기준들을 전환 시켜야만 한다.

심리학자 사무엘 스미스는 말하기를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품이 바뀌고 성품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했다. 큰 배를 움직이는 것은 선장이 붙잡고 있는 키이듯이, 우리의 삶도 생각에 의해서 움직이게 된다.

물은 흐르지 않으면 웅덩이가 되고, 생각은 흐르지 않으면 고민이 되고, 피는 흐르지 않으면 고름이 되듯, 우리의 생각이 흐르지 않으면 응어리가 되어 봄이 오고 꽃은 피어도 우리는 겨울을 사는 것 같다. 그러므로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돼야 하고 봄이 오는 소리를 희망으로 나눠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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