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보는 그때 그사람]거제가 낳은 국민가요 히트곡 제조기 조만호 작곡가

"작곡을 끝내기 전까지 어떤 곡이 만들어질지 모르듯이 인생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인생은 작곡만큼 어렵고 변화무쌍하다고 봐요."

지난 1일 고현의 커피숍에서 국민가요 히트곡 제조기 조만호 작곡가를 만났다. 그동안 인터넷 매체나 지인들을 통해 그의 소식은 접하고 있었지만 인터뷰 때문에 만난 것은 13년 만이다.

조 작곡가는 지난 2008년 본지 822호 거제사람들 코너에 '고향 알리는 최고 노래를 발표할 겁니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당시 인터뷰에서 조 작곡가는 성포중학교 매점에서 태어난 일화부터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 제대 후 작곡가 함문평 선생과 가수 윤수일씨의 문하에서 작곡을 배우다 가수를 하게 된 이야기, 가수 현숙씨를 비롯해 그가 작곡한 히트곡과 노래를 부른 가수들과의 에피소드, 고향 사랑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후배 가수 양성 계획 등의 다양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었다.

13년만에 만난 조 작곡가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검은 머리는 반백으로 변했지만 각종 취미생활로 그을린 구릿빛 피부는 여전히 선글라스(sunglass)와 잘 어울렸다.

그는 인터넷에 이름만 검색해 봐도 어떤 사람인지 웬만큼 알 수 있지만 대중에겐 그의 이름  석자보다는 그가 작곡한 노래와 가수의 이름이 더 유명하다.

그가 작곡했던 가수와 노래를 살펴보면 △현숙의 '해피데이', '요즘 여자 요즘 남자', '오빠는 잘 있단다', '춤추는 탬버린', '물방울 넥타이', '내 인생에 박수', '청춘아, 당신 만나길 잘했어' △현철의 '사랑이 불로초', '당신 없인' △장윤정의 '사랑 굿' △유지나의 '안 그런 척' △전승희의 '한방의 블루스', '그 사랑은 예고편' △전미경의 '탱고의 남자' △염수연의 '시치미' 등 셀 수 없이 많다.

조 작곡가는 히트곡 제조기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국노래자랑을 비롯해 수많은 무대의 심사도 도맡아 왔다. MBC 가요열창·i-Net 가요·KBS 전국노래자랑·KBS 도전주부가요 등이다.

40대의 젊은 작곡가는 어느덧 60대가 됐지만 왕성한 활동은 여전하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예전에 비해 익숙해졌다는 것과 지난해부터 시작돼 현재까지도 전국민을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로 무대심사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는 조 작곡가뿐만 아니라 국내 대중 가요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 기성 가수들이 설 무대까지 사라진 실정이라고 한다.

몇년 전부터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트로트 열풍에도 히트곡이 없거나 유명하지 않은 가수들은 오히려 더 힘들어진 상태다. 예나 지금이나 가수는 히트곡이 없거나 유명세가 없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건 변함이 없지만 신인·무명 가수들에게 작은 희망이었던 소규모 무대나 각 지역의 축제무대까지 사라졌기 때문이다.

거제에서 태어나고 성포중·거제공고를 졸업한 조 작곡가의 고향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작곡·편집 작업이 있을 경우가 아니면 서울보다 거제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특히 그의 후배 사랑은 남다르다. 지난 2008년 인터뷰 이후에도 수많은 거제지역 가수 지망생들이 그를 찾았다.

작곡가로서 가수의 홍보에 나서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조 작곡가는 그의 넓은 인맥과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9월2일자 당시의 인터뷰 모습.
2008년 9월2일자 당시의 인터뷰 모습.

조 작곡가는 작곡활동 만큼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취미활동으로는 서바이벌·사진·등산·윈드서핑 등이다.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건강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틈틈이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 시작한 취미활동이지만 대충하는 법이 없어 모두 전문가에 가까운 실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의 취미생활 중 가장 오래된 사진과 등산의 경우 활동을 하면서 작곡에 대한 영감을 얻는데 적잖은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전국대회를 거제에서 유치하는데 큰 도움을 줬을 만큼 열정을 쏟기도 한 서바이벌도 그가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는 취미생활 중 하나다.

조 작곡가는 지금까지 만들어낸 곡만 수백개가 넘고 이 중 대중에게 잘 알려진 히트곡만 수십곡이 넘지만 지금도 매년 20여곡이 넘는 곡을 만들고 있다.

예전만큼 다작(多作)에 매달리진 않지만 곡을 만드는 일이 그의 천직인만큼 꾸준한 작곡과 편집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저작권에 대한 법규나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그가 남긴 곡들에 대한 저작권 및 저작권료는 조 작곡가 사후 100년 동안 가족·후손에게 소중한 유산이 될 예정이다.

조만호 작곡가는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앞으로 목표는 건강하게 내가 좋아하는 취미생활과 함께 자연을 벗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살펴보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전국을 뒤흔들만한 조 작곡가의 히트한 곡이 뜸한 것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인생은 작곡과 같다'는 그의 말처럼 조만간 그의 손에서 국민들의 심금을 울릴 히트곡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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