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성 시인청마기념사업회장
양재성 시인/청마기념사업회장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고 시작되는 시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고교 교과서에도 실린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과 '깃발'은 국민 애송시다.

청마는 한국 문단의 거목으로 추앙 받는다. 거제 둔덕에서 태어나 일본과 북만주를 거쳐 교육자의 길을 걷다가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묘소도 고향인 둔덕 지전당골 양지바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거제시는 청마의 문학혼을 기리고자 청마기념관을 짓고 생가를 복원했다. 청마기념사업회는 매년 가을 코스모스 필 무렵 청마백일장·사생대회·청마시낭송대회·청마문학연구세미나·축하공연 등의 청마문학제를 치러오고 있다. 올봄에는 생가와 묘소 주변에 야생화·수선화·진달래·튤립·수국 등으로 꽃단장을 마치고 상춘객을 맞고 있다.

그런데 가끔 기우처럼 염려되는 점이 있다. 연유인즉, 청마의 문학적 위상과 가치를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거제시민들은 청마문학제를 둔덕 중심으로 치루는 의례적인 문학행사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외려 다른 도시에서 청마의 시혼과 위업을 더 잘 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들이다.

사실 청마가 지닌 브랜드의 가치는 무한하다. 저명한 예술인들이 그러하듯 청마도 문학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가 예술 관련 브랜드다. 요즘 대세인 스토리텔링과 감성마케팅을 접목하면 문화·관광 상품으로의 확장성과 가능성이 무궁하다.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얼마전 시인 윤동주의 삶을 그린 영화 '동주'가 상영됐다. 윤동주는 지금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손꼽힌다. 딱히 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그의 시 '서시'와 '별 헤는 밤'을 곧잘 외운다. 암울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청년 시인의 짧고 불행한 생을 서사적으로 그린 영화다. 널리 알려진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정지용의 '향수', 청마의 '깃발'도 그런 시대적 배경을 안고 탄생했다. 이들은 비슷한 시대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근자들어 문인의 작품과 삶이 재조명 받고 있다. 정지용 시인의 고향 옥천에는 그의 시 '향수'를 감성마케팅 브랜드로 앞세워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노래는 물론이고 시에 나타난 이미지를 형상물로 조성해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도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허구를 실제무대로 형상화한 관광 상품이다. 인근 고성의 공룡테마파크도 바닷가의 발자국 화석 몇개에 스토리를 입히고 공룡의 상상적 이미지를 형상화해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관광 상품이다.

요즘을 감성의 시대라 일컫는다. 위인이나 신격화된 영웅담보다는 영화 '워낭소리'나 '미나리'에서 처럼 인간적이고 소소한 진실에 공감하고 감동받는다. 감성에 호소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스토리텔링이다. 시와 시인의 삶을 분리해 생각하기는 어렵다. 삶의 저변에 깔린 경험과 가치관을 통해 시가 탄생하는 까닭이다. 에피소드와 소소한 이야기가 모여서 스토리텔링으로 작품에 덧입혀질 때 세인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는다. 몰래 들어와 노는 아이들이 싫어서 담장을 높게 쌓은 키다리아저씨의 정원에는 봄이 사라졌다. 하지만 담을 허물고 아이들이 찾아들자 봄이 찾아오면서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들었다는 옛날 동화가 생각난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는 벽을 허물어야 한다. 누구나 자유롭게 노닐 수 있도록 닫힌 빗장을 열어야 한다.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달린 백로 같은 순정이야말로 진정 행복하고 아름다운 누구나의 로망이 아니던가.

올해 제11회 청마시낭송대회는 시극(詩劇)경연으로 치러져 유튜브로 방영될 예정이다. 장차 청마의 문학과 삶이 노래와 뮤지컬, 애니메이션,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로 거듭났으면 하는 기대와 희망을 품는다. 행복을 향한 깃발이 거제를 넘어 세계만방에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처럼 힘차게 펄럭이는 그런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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