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태 편집국장
백승태 편집국장

국민 70%에게만 지급키로 했던 재난지원금이 논란 끝에 전국민 지급으로 바뀌면서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일부 해결하기 위해 나온 처방이 지원금의 기부다.

자발적 기부를 바라는 소극적 처방이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기부를 시작하자 고위공직자들은 물론 각 정당들도 여러 방법으로 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기부 릴레이는 가까이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변광용 거제시장·옥영문 거제시의회 의장까지 이어지면서 거제시청 고위공직자들도 동참의사를 밝혔다.

거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지역 금융계와 각계각층의 단체들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자발적 기부는 코로나19를 극복하자는 배려와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지난 11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한 재난지원금이 일부 가정과 모임 등에서 갈등의 소지가 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기부를 하자는 의견과 하지 말자는 의견이 상충하면서 말다툼이 일고 가정불화로까지 이어진다는 웃지 못할 현실이다.

남들이 기부 한다는데 안하자니 눈치 보이고, 쓰라고 준 지원금인데 기부하자니 서운하다는 다툼이다. 강제성 없는 자발적 기부라고 이름 붙였지만 체면과 처신을 중요시 하는 현실에서 자발적 기부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한 사회단체는 기부여부를 회의안건으로 올렸지만 회의결과 회원 대다수가 동참하는 연대 기부는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회원 자율에 맡긴다고 결론 냈다.

굳이 기부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손길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다. 앞장 서 기부에 동참한 따뜻한 마음이 고맙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기부가 강제적이거나 마지못해 부화뇌동해야 하는 기부라면 진정한 배려와 노블리스 오블리주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처럼 기부를 하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되고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된다.

대통령이 했으니, 지도층 누가 했으니, 어느 단체가 했으니 하면서 눈치 보여 마지못해 따라하는 기부는 순수성이 떨어지고 '사돈 따라 거름지고 장에 가는 격'이다.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은 알아서 기부하라'는 바람도 불어 넣어선 안 된다. 강요하거나 눈치를 줘도 안 되고 비난해도 안 된다. 뺏는 만큼 얄미운 게 없다. 우여곡절 끝에 받은 지원금을 자발적 기부라는 미명하에 뺏길까 조바심치게 해서도 안 된다.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 서 기부하니 '너도 나도 하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는 건 더욱 곤란하다.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무리 공돈이라도 기부는 자발적일 때, 필요한 곳에 쓰여 질 때 아름다운 법이다.

정부가 주는 재난지원금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소비 진작과 지역경제 활성화, 골목상권 살리기 등이 목적이다.

그러나 재난지원금은 받지 않으면 자동 기부돼 고용보험기금에 편입된다. 기부된 돈이 골목상권이나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당초 목적보다 고용안정이나 직업능력개발사업·실업급여 등 고용보험사업의 재원 충당을 위해 쓰이게 된다.

다행히 거제시장을 비롯한 지역 고위 공무원들은 지원금을 수령해 거제시희망복지재단에 기부해 지역에 기부금이 사용될 수 있게 한다는 소식이다.

마땅히 존중받고 칭찬받아야 하는 기부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발적 기부와 재난지원금을 취지에 맞게 사용해 위축된 소비를 살리고 동네 상권과 어려운 이웃을 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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