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호자 수필가
곽호자 수필가

아홉 시 뉴스. 오늘도 여야끼리 논쟁이 뜨겁다. 늘 그렇듯이 한쪽이 공격하면 한쪽이 되받아친다. '핑퐁게임'이다. 타 방송을 돌려봐도 떠드는 건 마찬가지다. 정쟁의 소용돌이 끝에 임명된지 한 달도 못된 정치인이 낙마한다는 속보가 뜬다.

그놈의 돈이 문제였을까. 우리 같은 서민들이야 그들의 거래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쳐놓은 그물에 왕거미가 수거를 시작한다. 시사평론가의 신들린 달변이 기승을 부리고도 남을 일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라고 했듯이 정치도 요지경속이다. 서민인 우리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건지.

60년대의 정치가 한 분을 떠올려 본다. 그는 장관이었다. 고향이 이북인 그 분은 청렴함이 세간에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다. 임기를 마칠 때까지 언론을 비껴갈 수 있었던 것은 능력과 청렴함이 뒷받침했으리라고 본다.

오십여년 전, 그 정치가의 댁에 다녀온 적이 있다. 시골에 계신 그 분의 장모님을 모시고 가는 일을 맡아서였다. 연로하시어 동행이 필요하던 차 먼 조카딸인 나를 점찍었다고나 할까. 마침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여가가 났으니 기회가 딱 맞은 것이었다.

서울행은 난생 처음이었다. 방향 감각도 모르는 터미널 앞에서 웬 여자가 섰다. 할머니의 딸이자 장관의 부인이었다. 낯설기는 서로가 같았다. 서먹한 채로 차에 올랐다.

한참을 달리더니 숲이 있는 언덕으로 오르자 용산초소가 보였다. 헌병이 차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얼떨결에 장시간의 피로가 싹 가셨다. 곧 관사가 눈에 들어왔다.

관사는 경직된 나에게 조금은 이완이 되는 풍경으로 비춰졌다. 아주 평범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관쯤 되면 근사한 양옥에 넓은 정원이 있어야 제격이라 여겼지만 그 상상은 어긋났다. 집 내부 역시 내 호기심을 채울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복도는 삐걱거리고 벽지는 바래져 장관이 거처하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디 한 군데를 둘러봐도 호사스러운 것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를 뜨악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장관의 밥상이었다. 일찍 저녁을 마친 식구와 달리 늦게 귀가한 그 분의 밥상은 반찬 가짓수가 단출했다. 그 중에 반토막 굴비만 돋보였다. 반으로 자를 만큼 씨알은 굵어 보였기 망정이지 체통에 썩 어울리는 밥상은 아니었다.

굴비는 예나 지금이나 서민이 쉽게 먹을 수는 없는 식품이다. 명절에 어쩌다 얻어지는 기회에 맛이나 보는 것이었다. 그 귀한 것이 반 토막으로 잘려 장관의 밥상에 올려진 것이다. 어두진미라고 알아 잡수시는가 했더니 서너번 젓가락을 대고는 상을 물렸다.

이튿날 아침 거실겸 큰 방에 가족들이 모여 왁자지껄한데 부인이 출근할 남편의 밥상을 들고 왔다. 그 밥상 한가운데에 어제 저녁에 올렸던 것 같은 반토막 굴비가 또 차려져 나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뒤집어서 올려졌다. 짙은 갈색으로 재탕된 굴비는 멀쩡했다. 완벽한 변신이었다. 알고도 모른 척일까. 그 분의 너그러움이 무릇 경이로울진대 방안으로 비춰지는 햇살 속에 꽃가루 같은 먼지가 폴폴 날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가정안에서는 그 분의 존재가 크지 않아 보였다. 차려주는 밥상을 조용히 받고 조용히 출근하는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굴비를 반 토막을 올리든 뒤집어 올리든 재탕을 하든 시시비비하지 않는 도량 넓은 위인이었다. 지체 높은 분에게 저렇게 소박해도 저렇게 무성의해도 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곳 관사의 일상임에는 틀림없었다.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린 그 분의 가정생활은 열아홉살 처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지만 권력자인 그 분의 인품에서 느껴진 게 있다면 가정 안에 권위는 무의미한 것이라 여겼다.

평범한 것이란 인간적인 것과 상통한다는 것을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은 상경의 큰 수확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분의 밥상에 오른 반 토막 굴비의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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