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복 (90.9㎝×65.1㎝/oil on canvas. 2018)

겨울은 길고도 어두운 계절이다. 산과 들의 자연은 색을 잃어 생명감이 약하고 도심의 모습에서도 공허와 쓸쓸함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에는 늦가을과 초겨울 아침에 만나는 들판의 하얀 서리에서 겨울을 예감했지만, 지금의 겨울은 그렇게 낭만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람들의 옷차림과 매스컴의 요란한 일기예보를 통해 겨울은 예감돼 난방 물품과 겨울 옷들을 준비할 뿐이다.

하얀 눈, 앙상한 나뭇가지에 맺힌 차가운 고드름, 냇가의 언저리에 자리한 살얼음도 볼 수 없는 그저 공허한 느낌의 겨울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2월이지만, 겨울과 봄사이 그 중간의 시간이며 겨울의 차가움과 봄날의 따스함, 멈춤과 시작이 공존하니 2월의 끝에 봄이 오고 꽃은 핀다. 봄을 앞둔 2월의 화가는 캔바스에 초벌 색칠을 하면서 기억속으로 들어가 수많은 생각의 뿌리 중에서 봄날에 날리는 눈 꽃송이에 대한 모순된 형상을 끄집어낸다. 흔적만 있고 실체가 없는 꽃들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고 사라지는 듯하지만 어느새 대기를 가득 채워 몽환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장면이다.

봄날에 대한 그 기억은 작가의 작품세계에 바탕을 이루는 조형적 요소가 됐다. 무수한 점과 원으로 이어진 꽃의 이미지와 화면의 바탕을 이루는 바람의 색조는 단순하면서 공간감을 살려 주고 있다. 연약한 꽃잎과 가느다란 가지 끝에서 생명의 초상을 보게 된다.

꽃은 봄이다….

글 : 권용복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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