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신문이나 잡지를 보다가 ‘숨은 그림 찾기’ 난을 보게 되면 반가운 마음에 얼른 연필을 잡는다. 처음엔 보이지 않던 그림들이 차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떤 그림은 예상했던 곳에서 쉽게 찾기도 하고, 또 어떤 그림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어 급기야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하고 오기로 숨은 그림을 찾을 때도 있다.

때로는 운이 좋아 숨어 있는 그림들을 단숨에 찾아내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한두 가지 그림은 포기하게 된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손에서 연필은 내려놓지만 눈길만은 여전히 그 곳을 떠나지 못한다.

이렇게 사람을 붙잡아 두는 매력이 있기에 나는 숨은 그림 찾기가 재미있다. 인내심이 없으면 숨은 그림을 모두 찾고 난 뒤의 만세 삼창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숨은 그림을 찾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으면서도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서의 숨은 그림 찾기, 즉 사람의 겉모습에서 보이는 것이 아닌 진짜 그 사람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참모습이란 사람의 내면일진대 말이나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이 보여주는 것이 아닌 나에게 보이는 것, 즉 느낌으로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찾고 있는 그림 속에 숨은 그림이 반드시 들어 있듯이 사람에게도 그 사람만의 개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기에 따라 장점이 되기고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는가는 찾는 자의 몫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 사귀기가 귀찮아진 나는 새로운 인간관계 맺기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릴 땐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좋던 사람들이 이젠 이래서 싫고 저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사람의 장점을 먼저 찾을 줄 아는 내 맑았던 눈이 어쩌다가 이제는 그 사람의 단점부터 보게 되는 혼탁한 눈으로 변했을까? 단점을 보고 나니 포용하기보다는 거부하는 마음이 앞선다.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좋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침 시간에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혼자 있는 집에 ‘딩동’ 소리가 들리면 나는 일부러 숨도 쉬지 않고 잠시 행동을 멈춘다. 초인종의 여운이 사라질 때쯤이면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미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을 나에겐 귀찮은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이렇게 서서히 사람과의 단절 속에서 지내온 나에게 실로 획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새로운 인연이 생긴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박 선생님.

차가운 인상 때문에 얼굴을 알고도 몇 년간 인사도 하지 않고 지냈다. 내심 라이벌 의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석 달 전, 개인으로 수업하는 논술지도 선생님 모임을 만들게 되면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가 먼저 박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먼저 예상하지 못했던 씩씩한 목소리에 놀랐고, 또 진작 이런 모임을 만들었으면 했다는 적극적인 반응에 또 한 번 놀랬다. 그래서 선생님과의 만남은 자연스러웠고 쉽게 친해졌다. 같은 일을 하니 통하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도 그 선생님으로 인해 사람을 선입견에 의해 판단하는 버릇이 없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박 선생님의 숨은 그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숨은 그림 중에는 물론 박 선생님의 장점도 단점도 모두 들어있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을 모두 하나의 개성으로 본다. 장점과 단점을 따지는 인간관계가 아닌 개성으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인간관계로의 발전. 숨은 그림 찾기는 역시 매력적이다.

박 선생님의 숨은 그림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바로 아이들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이었다. 십 년이 넘게 아이들 논술지도를 하면서 일년 중 하루도 쉬지 않고 수업을 하고 있다. 그 방대한 독서량과 일일이 교재를 만들어서 수업하는 모습에 난 감동했고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차가운 인상은 겉모습일 뿐 속마음은 아주 따뜻하다. 같은 아이들을 십년 넘게 가르치다보니 회비를 한 번도 올리지 못했다며 빙긋이 웃는다. 어째서 나는 저 얼굴에서 차가움부터 보았는지.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림 속의 숨은 그림을 찾는 것은 한정되어 있지만 사람 속의 숨은 그림 찾기는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알게 되고 친해지면서 좋은 점은 더욱 찾기가 쉽다. 잘 찾아지니까 재미있다.

때론 나와 맞지 않는 점도 찾게 될 것이다. 속마음이 상해서 며칠 얼굴 보기가 싫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국 나는 진심어린 충고에 봄눈처럼 마음이 녹아, 며칠 못 본 그 얼굴이 그리워 달려갈 것이다.

박 선생님 뿐만 아니라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도 숨은 그림 찾기를 해본다. 내 남편의 숨은 그림, 내 아이들의 숨은 그림, 내 이웃의 숨은 그림들을 찾으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이제 숨은 그림 찾기 선수인 나는 ‘딩동’ 하는 초인종 소리에 “누구세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당당하게 숨도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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