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태 편집국장
백승태 편집국장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노조원들이 거제시장실을 무단 점거해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리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생존권 사수' 글귀를 새긴 붉은색 머리띠를 두른 노조원 30여명이 기습적으로 시장 집무실 문을 발로 차 훼손하고 난입해 탁자와 의자·서류 등을 집어던지며 시장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시장실과 시청 곳곳에 '동종사 매각반대' 스티커를 붙이는 등 30여분간 난동을 벌인 후 그들은 개선장군마냥 유유히 물러갔다.

일부 공무원들이 저지하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흥분한 노조원들의 험악한 분위기를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속수무책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13일 오전 기습적으로 이뤄진 노조원들의 난동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했다. 경찰조차 이같은 정황을 사전에 인지 못할 정도로 신속하면서 비밀리에 진행됐고, 요구사항을 새긴 스티커를 미리 준비하는 등 치밀한 계획성도 보였다. 그들이 시장실에 난입한 건 대우조선해양 매각과 관련해 거제시장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내놓지 않기 때문이며, 회사가 동종사인 현대중공업에 매각되면 노동자는 물론 거제시와 경남의 경제가 파탄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회사가 존폐 위기를 맞아 노사 모두 고통의 시기를 보내고, 이제 회사가 정상화 길을 걷고 있는데 노동자를 배제한 체 밀실에서 헐값으로 동종사에 매각하면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지역경제 또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일리 있는 분석이다. 노동자뿐 아니라 거제시민 대다수도 이 같은 위기감을 헤아리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러기에 매각 반대 여론에 힘을 실어달라는 노조의 요구도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엄연한 법치국가이고,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폭력적이고 조직적인 난입·난동과 공무방해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해야 한다. 국가의 기본인 법치와 준법정신이 무너지면 경제와 사회질서는 물론 민주주의 발전도 헛구호에 불과하다. 아무리 그들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옳다고 하나 폭력을 앞세우면 공감할 수 없고 외면받기 마련이다.

법적 테두리에서 모든 주장과 행동이 이뤄져야 하며, 요구가 받아들여 지지 않는다고 불법적인 행위를 정당화 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를 무력하게 만드는 위험한 처사다.

대우조선 매각과 관련해서는 거제시민과 경남지역 상당수가 대우조선 노조의 '일방적인 동종사 매각 반대'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물론 범시민대책위도 구성돼 동조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주인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론적 입장에서 시각을 달리하며 피해를 최소화하고 얻을 건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는 않지만, 매각이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주장에는 의견을 같이한다. 노조원들의 성에는 차지 않겠지만 거제시장도 노조의 입장에 반하기보다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원들의 폭력과 난동은 모처럼 형성된 시민공감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나로 뭉쳐도 부족한 시점에, 이유와 명분이 무엇이든 폭력과 불법으로 요구를 관철하겠다는 무질서한 행동은 시민사회의 공감은커녕 여론의 역풍만 가져올 공산이 클 뿐이다.

노조원들의 이날 행동을 지켜본 한 공무원은 "그들은 폭력면허를 갖고 있는 점령군 같았고, 그 면허를 행사하는 것처럼 공무원들을 억압하며 당당하고 거침없이 시장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같은 일부 노조원들의 폭력과 집단행동에 공권력이 무너지고 시민들도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행이 경찰이 뒤늦게나마 수사에 착수하고 촬영한 영상과 사진 등을 통해 불법 여부를 가려 피의자를 입건할 계획이라고 한다.

거제시민을 위한 거제시청이 특정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화풀이장소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불안을 증폭하고 혼란을 야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집단이기를 앞세운 폭력이 정당화 돼서는 더욱 안된다. 불법 투쟁은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노조도 직시해야 한다. 정의롭다고 시민이 인정할 때 노조활동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다는 것을 되새기고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는 대우조선 노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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