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태 편집국장
백승태 편집국장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 인수합병이 구체화되자 거제지역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위기감이 전역을 휩쓸면서 "아직도 짐 안 쌌나, 이제 어디서 뭐 해 먹고 살지, 식당 문을 닫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거제경제는 어떻게 되지, 피땀 흘리며 어렵게 회사를 지켜왔는데, 이왕이면 지역 업체인 삼성이 인수하지, 자기네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고 노동자는 길거리 껌 취급한다, 거제시와 정치권은 뭐하나, 잘리기 전에 아들·딸 결혼시켜야겠다, 울산으로 이사 갈 준비해야겠다, 거제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일방통행식이다, 지역경제와 노동자를 무시한 처사는 사생결단으로 맞서야한다"는 등 자괴감 서린 말들이 퇴근길 쓴 소주 안주거리로 오르내린다. 모두가 인수합병 이후 예상되는 구조조정과 지역경제에 미칠 후폭풍을 우려해서 하는 말들이다.

대우조선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지난 12일 삼성중공업의 인수참여 포기로 현대중공업을 대우조선 인수 후보자로 확정했다. 내달 초에 이사회 승인을 거쳐 현대중공업과 본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부터 물밑협상을 진행해 왔다고 뒤늦게 밝혔지만 지난달 29일 인수합병 추진사실이 공개된 이후 모든 작업이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모양새다. 이같은 작업이 진행될 동안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는 물론 경영진들조차 까마득히 몰랐다. 언론공개 이후 사실을 접하고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우조선노동조합은 합병 추진과정이 노조참여가 배제된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 간 밀실야합이라 규정하고 매각철회 등을 요구하며 12일부터 산업은행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13일에는 노조 회의실에서 거제경실련·더불어민주당 거제시지역위원회 등 22개 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정당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우조선 매각반대 범시민단체 및 각 정당 간담회'를 열고 매각 반대 투쟁을 본격화했다. 또 18·19일에는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고 27일에는 전 조합원의 상경투쟁을 준비하는 등 투쟁수위를 높이고 있다.

노조는 전체 노동자의 고용안정 및 생존권 사수·노조 및 단체협약 승계·국가 및 지역경제 활성화 등 3대 목표와 동종업체 매각반대, 노조 참여 보장, 분리매각 반대, 해외매각 반대, 투기 자본 참여 반대 등 5대 기본방침을 밝히며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연대해 맞서겠다는 강경태세를 보이고 있다. 거제시도 연대투쟁 방침에는 동조하고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하는 일이라는 이유 등으로 눈치를 보며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 있는 느낌이다.

인수합병에 주도적인 산업은행 등은 두 회사가 합쳐지면 글로벌 조선사로서 경쟁력과 확고한 입지를 굳힐 수 있는데다 삼성중공업 역시 업계 재편 탄력으로 인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생산량과 생산비용이 동시에 늘어나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다면 수주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상당수 언론들도 '대우조선해양의 주인 찾기'에 공감하면서 세계 1위 조선사 탄생, 시너지효과, 기술력 및 효율성 향상, 이동걸 산업은행장을 과감한 결단 등을 운운하며 원론적인 기대감을 높여가고 있다. 불편하고 야속하지만 모두 그들만의 잣대로 거제의 향토기업을 파헤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현장 노동자와 거제시는 발등의 불로 여기고 있다. 긴 불황을 뚫고 오며 허리띠를 졸라맨 조선사 직원들에게 거대한 산업재편 움직임은 또다른 '생계'의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거제지역 경제에는 예상치 못할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합병으로 인한 인적 구조조정과 물량 빼가기는 거제를 비롯한 경남권 기자재업체의 타격으로 지역경제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주판알을 튕기겠지만 당사자인 우리들에게는 독이 될게 훤히 보인다. 남들이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젯밥 챙기기에 나서겠지만 거제시민들은 당장에 떨어진 발등의 불을 꺼야만 한다. 거제시도 노동계나 시민사회단체의 뒤에 서서 정부의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거제경제를 살리고 시민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반대할 건 반대하고 요구할건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조선산업이 지역경제의 70~80%를 점유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조선소가 나락으로 떨어지면 세계로 가는 평화도시 또한 요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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