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살인적인 폭염이 거제섬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시민들은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온열질환으로 병원을 찾는가 하면 직·간접 영향으로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다. 기상관측 이래 사상 최악의 폭염이 연일 최고 기온을 갱신하다보니 몸과 마음까지 지친 시민들은 별의별 피서법을 생각해내고 있다.

얼마전 늦은저녁 지인을 만나기 위해 A 커피전문점에 들렀다. 마감 시간이라 손님은 별로 없었지만 모두들 뭔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커피숍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3∼4명의 가족들이 찾아와 각각 다른 자리를 차지하고 커피나 빙수를 시켜놓고 핸드폰게임·독서·노트북으로 영화보기·공부하기 등을 하며 작게는 4∼5시간이나 많게는 10시간 이상을 가게에서 있다가 집으로 간다는 것이다.

'재밌다'는 생각에 젊은 직장인들에게 '신풍속 피서법'에 대해 물었다. 영화관 피서법이 유행이란다. 더위에 지친 시민들이 시원한 영화관을 신종 피서지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또 '호캉스'라는 신종 피서법도 있다고 한다. 해외 유명 휴양지나 국내 해수욕장·계곡·캠핑장으로 피서를 떠나면 상대적으로 도심 호텔들의 객실 요금이나 부대시설 이용요금이 절반가량이 저렴해져 이때를 이용해 도심 호텔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호텔 바캉스를 즐긴다는 것이다. 여름더위를 넘기는 방법들에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절기는 속일수 없다고 지난 7일 입추(立秋)가 지나고 난 요며칠 아침·저녁으로 더위가 한풀 꺾였다. 올 여름은 에어컨이나 선풍기 없이 보낸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기요금이다. 국가에서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내년에도 계속 될 찜통더위에 대한 정부대책이 시급하다.

또 국민들의 '마음의 피서'도 중요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여름나기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선조들의 여름나기 피서법을 소개할까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농촌에서는 '천렵'이라고 남자들이 주축이 돼 냇가나 강에서 그물 등으로 물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또 '유두절'이라 해서 여자들이 초저녁에 맑은 개울에서 목욕과 머리도 감고 유두날 밀국수를 해 먹기도 했다.

이는 모두 서민들의 여름나기 피서법이었고, 옛 선비들의 피서법하면 당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소서팔사(逍署八事)'라는 시에 적혀있는 피서법이다. 소개하자면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타기 △대자리 위에서 바둑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 비오는 날 한시짓기 △강변에서 투호놀이 △달밤에 발씻기 등이다.

'송단호시'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로 여름철 체력을 유지했고, '괴음추천' 큰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를 타다보면 한낮에 부채질 보다는 나았으리라. '청점혁기' 대나무자리에서 바둑두기는 먹기내기 바둑으로 구경꾼들까지 여름 보양음식을 함께 나눠 먹자는 것이고, '서지상하' 서쪽 연못의 연꽃을 구경하면서 더위를 즐긴다는 것은 상상만해도 시원해진다.

'동림청선' 동쪽 숲속에서 매미소리 듣기는 요즘 도시 매미소리는 소음이지만 숲속 솔바람부는 정자에 누워 매미소리를 듣는다고 상상해 보라. '우일사운' 비오는날 시를 지어놓고 다시 읽어보는 운치는 과히 조선 선비의 풍류를 느끼게 하고, '허각투호' 여름에 투호놀이 한번하고 술 한 잔 마시면 흥이 절로 일 것이다. '월야탁족' 달 밝은밤 물가에서 발을 씻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신선놀음이라 할 수 있다.

다산 선생은 더위를 피하지 않고 즐기면서 여름나기를 한 것 같다. 월야탁족이라는 말과 같이 다른 것은 할 수 없어도 양말 벗고 시원한 계곡에 발 한번 담궈보는 상상을 해본다. '여름' 덥다고만 하지 말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여름나기를 선택했으면 한다. 에어컨·선풍기도 좋지만 여름도 내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인데 아깝게만 보낼 수 없지 않겠는가?

좀 시원해졌는지 모르겠다. 더위와 몸으로 싸워 일할 수밖에 없는 농·어민들과 노동자들께 피서 이야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생각과 시원하게 여름을 즐겼었던 사라진 구천계곡에 대한 아쉬움이 인다. 한여름의 더위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더위와 싸우지 말고 함께 가는 각자의 지혜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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