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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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했다. 인도네시아는 다문화로 구성돼 민족 수 만큼이나 언어도 다양했다. 그런데 재밌는 말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정한 표준어로 '고맙습니다'는 '뜨리마 카시'다. '뜨리마'란 받는 것이고 '카시'는 주는 것이란 뜻인데 이 두 단어가 합쳐져서 '고맙습니다'란 관용어가 됐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주고받는 것(Give and take)'이 더 자연스러운데 인도네시아에서는 받고 준다. 그래서 고맙습니다란 관용어가 됐다고 하니 뭔가 어색해 인도네시아 체류 동안 그들의 생활을 유심히 지켜봤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주면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살아왔다. 그리고 주기는 했는데 받지 못했다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거나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준 사람이 어떤 사정이 생겨 답례를 못하게 된 상황은 살피지 않고 좋은 관계가 틀어져 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처럼 받고 주는 것이 문화라면 받지 않았으니 주지 않아도 되고 줄 의무도 없으니 마음의 빚도 없는 것이다. '뜨리마 카시'란 말을 하면서도 꼭 말장난 같다. '주고 받는 것'이나 '받고 주는 것'이나 따지고 보면 같은 의미인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마음의 빚이나 마음의 상처를 입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한번쯤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주고받는 것이 관례처럼 돼버렸다. 오죽했으면 '김영란 법'이라는 법률이 생겨났을까라고 웃어넘기는 우리가 인도네시아의 '뜨리마 카시'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한다. 주면 받고자 하고, 대가없이 주지 않아 뇌물이 돼버린 문화가 우리사회의 현주소이다. 가까이는 거제시에도 공무원 뇌물사건으로 모 과장이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시민들은 검·경 수사를 다 믿지는 않는다. 또 처벌을 받는 사람도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재수가 없어서 내가 걸렸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을 왜 받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영원히 풀어야 할 숙제다. 거제시의 모 과장은 아파트 인·허가의 편의를 제공했고 대가성의 뇌물을 받았다는 것이 검찰의 기소의견이다. 거제시에 수년 동안 무수히 많은 아파트 인·허가가 발생했는데 정말 재수 없게 한 개만 걸렸다는 것인지. 거제시는 시장이 받지 않기로 유명하니 모 과장 빼고는 모두 받지 않는 청백리인지 모를 일이다. 거제를 떠들썩하게 했던 조폭 장 모씨 정적제거사건 또한 많은 시민들은 유람선 사업자가 대가성을 바라고 얼마만큼을 누구에게 줬나 관심이 쏠려있다. 검·경의 수사대로 장 모씨에게 유람선사업자가 수천만원을 갈취당한 것이 전부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이 모두가 주고 대가를 받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분명 사업자가 먼저 유혹했을 것이고 공무원은 이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약간의 도움을 줬을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먼저 대가를 바라고 주는 문화에서 벗어난다면 온갖 뇌물비리 사건으로 인한 메스컴 보도로 인상을 찌푸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국회의원부터 기초단체장, 일선행정 공무원까지 벌이는 뇌물사건 그리고 혀를 차는 우리의 문화. 이제는 주지 않는 문화를 우리 국민 모두가 생활화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은 이들의 문화를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이야기했다. 또 느림의 미학을 가졌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특히 교통문화에서 이들의 국민성을 찾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차와 오토바이가 뒤섞여 교통체증은 말할 수 없이 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무질서의 교통난 속에서 교통사고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이유를 교민들에게 묻자 이들에게는 배려와 양보가 생활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구 2억6000만에 자동차 수천만대가 움직이고 꽉 막힌 도로에서도 교통사고나 싸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배려와 양보·느림의 생활문화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또 10분 거리를 한 시간 이상 가야 하는, 우리가 보기에 교통지옥인 나라에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늦어져도 화내지 않고 교통사고가 얼마 발생하지 않는 그들의 문화를 빨리빨리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국민들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에 늦는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한번쯤은 그들의 문화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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