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김동성 본지 대표이사

어느 대학에서 말하기와 듣기 강의 두 가지를 개설했는데 말하기 강의에는 수강생이 몰려 학생이 넘쳐났지만 듣기 강의는 소수 지원으로 아예 폐강이 됐다고 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즐겨하라'는 교훈에도 인간은 듣기보다 말하기를 좋아한다.

말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동의와 협조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듣기를 무시하는 경향이 생겨버린 것이다. 요즘은 파워스피치 강의라고 하여 지도자급 인사나 정치인, 영업사원 등 다양하게 말하기 공부를 하고 모든 이들이 말을 너무도 잘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말을 재치 있고 설득력 있게 잘하는 것이 필수요소가 돼버린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게 됐다면 말을 듣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데 우리에게는 잘 듣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니 무엇인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귀가 두 개이니 남의 말을 두 배로 듣고 입은 하나이니 듣는 것의 반만 하면 될 것을 듣는 것은 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토론회라고 열어 찬반을 말하라고 하면 제법 이름 있는 자들의 토론문화는 기가 막힌다. 자기자랑하자고 나온 건지 단체 홍보하러 나온 건지 인기성 발언까지 쏟아낸다. 거기에 상대방 의견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 토론 중에 언성이 높아지기는 다반사이고 심한 모욕적 발언에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과 토론할 수 없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정치를 하는 자들은 더 대단하다. 정책공청회는 형식에 불과하다. 시민의 말을 듣기 싫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인들의 선거공약에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습니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선거철이 지나고 나면 이 말은 액세서리다. 여와 야, 대한민국은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공화국이 돼버렸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국민에게 듣고자 해도 우리 국민적소양이 토론문화에서 듣기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듣기를 잘 못하는 국민이 돼버렸다. 모두 자기주장만 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거제의 10년 대계, 100년 대계를 위해 시민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사업임에도 제대로 된 공청회와 토론회 한번 없이 결정권자가 결정하고 의회에서 민주주의라는 논리에 밀려 결정돼 버리는 경우가 많다. 고현만 매립부터 사곡만 국가산단·학동케이블카·내륙연장 철도사업·고교평준화·지심도 개발계획·저도소유권 이전문제 등 거제는 많은 현안들이 있다.

그러나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여와 야가 지역발전을 위해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주장만하고 듣지를 않는다. 상대방의 생각은 틀렸다는 것이다. 괜히 귀찮은데 상대방 말을 듣지 않고 문제를 크게 키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거제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는 다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누구의 말이 전부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누가 더 설득력이 있는지 공개의 장에서 토론회 정도를 가져보자. 서로가 불신의 벽을 깨고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판단하게 해줘야 한다. 왜 우리는 나와 다름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역지사지로 한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어느 통신사에 실린 틀림과 다름에 대한 글이다. '흑인은 얼룩말을 보고 원래 검정색 바탕에 흰색 무늬가 있다고 말합니다. 백인들은 원래 흰색인데 검정색 띠가 있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다 자신을 중심으로 보기 때문이겠지요. 흑인들은 검은 커피를 보고 '살색'이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말은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일 뿐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의 90%정도는 이 말 하나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풀어지는 것 같습니다. 환경이 다르고 성장한 것이 다르고 지금의 위치가 다르기에 나와 다르게 생각하고 나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할 때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습니다. 다름을 이해할 때 남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고 선진화 된 시민의식을 갖고자 한다면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해줘야만 가능할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으면서 자기의 말만 들어라하고 남을 무시하고 교만하면서 나에게는 공손하라고 하고 다른 이에게는 야박하고 인정 없이 하면서 나에게는 신의, 선의를 베풀라고 한다면 이런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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