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민리포터

김수영 다대교회 목사
김수영 다대교회 목사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뻔뻔하게 사는 사람을 두고 '철면피(鐵面皮)'라 하지요. 이 말은 옛날 송나라에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왕광원이라는 사람한테서 나온 말인데, 그는 자기보다 좀 높은 벼슬아치다 싶으면 누구든지 간에 그 앞에 굽실거리면서 낯이 간지러울 정도로 온갖 아부를 다 떨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관리가 술에 취해 채찍으로 그를 때리자 "때리세요. 매는 때리라고 있는 것이니 기꺼이 맞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화를 내기는커녕 헤헤 웃으며, 비굴하게 고관의 비위를 맞췄다고 합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저 사람 낯가죽이 철갑을 두른 것 같이 두껍네'라고 한데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고 하지요. 짐승은 부끄러움을 모르니까요. 그래서 사람의 사람됨은 부끄러움을 아는데 있으며,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알 때 '인간답다' '비로소 사람됐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인간에게는 거룩한 수치감이 있어야 합니다. 군자의 덕 중에 수오지심(睡惡之心)이 있습니다. 악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 잘못된 일에 대해 부끄러워 할 줄 아는 마음이 군자의 마음이요, 그런 사람을 군자(大人)라 했던 것이지요.

돈이 많고, 학식이 많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사람, '미안하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 더 나아가 회개하고 돌이킬 줄 아는 사람이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요, 정말 괜찮은 사람이요, 군자 중의 군자요, 정말 하늘의 복을 받을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하나님의 자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제는 무엇을 부끄러워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가난은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닙니다. 게으른 것이 부끄러움입니다. 부자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도둑질(부정한 방법)하여 모은 불의한 재물이 부끄러운 것이요, 가진 것으로 약자들에게 갑질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학벌이 좋지 못하다고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정유라'처럼 대학에 부정입학이라도 해서 간판이라도 따자고 하는 진실치 못함과 배웠다고 거들먹거리는 교만함이 진정 부끄러운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체구가 작고 용모가 초췌하고 못생겼다고 부끄러워합니다만 진실로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좁고, 더러울 뿐만 아니라 죄악으로 가득한 우리의 심령이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래서 지난 날 깨어있었던 '에스라'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악(惡)을 깊이 통찰하면서 "나의 하나님이!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스9:6)"라고 고백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간의 인간됨의 평가는 그의 자랑과 부끄러움이 무엇이냐에 따라 구별된다고 합니다. 나는 무엇을 부끄러워하며 무엇을 자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정말 부끄러워 할 일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는 일에 부끄러워하며 살고 있지는 않느냐 말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아무 일이 아닌 것에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면, 타인에 의해 좌우되는 어리석은 자요, 소인배(못난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주객이 전도돼 부끄러움을 자랑으로 삼고, 그것을 가지고 우쭐대고, 갑질하며 살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성공으로 알고 그것을 추구하며, 그것을 위해 올인하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고 있으며,그 결과로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으로 가는 것 같아 참으로 걱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고백하며 자기를 갈고 닦았던 시인 윤동주처럼 나도 진리(하나님)에 이르는 몸부림을 통해 한 자루의  촛불로 우뚝 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희망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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