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민 칼럼위원

▲ 이용민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유네스코의 다양한 사업 중에는 세계 여러 도시간의 네트워크에 기여하고자 하는 일들이 많다. 기후가 다르고 인종도 다르고 문화적 배경 또한 다르다 보니 도시가 가진 자산은 놀라울 만큼 각양각색이다. 그런 도시들의 특징에 맞게 카테고리를 이리저리 묶으며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게끔 주선을 하는 것이다.

자연이 뛰어난 도시는 자연유산도시, 문화적 저력이 돋보이는 도시는 문화유산도시, 인류의 삶과 밀접한 영역에서 창의적 발상으로 도시를 잘 가꾸어 나가고 있는 곳은 창의도시 등으로 구분해서 매년 일정 도시를 지정해 나가고 있다. 일종의 도시 보증서 같은 셈이다.

하마마츠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로 선정된 도시다. 이번 주 이 도시에서 유네스코 세계음악축전을 개최했다. 나도 업무상 연관이 있어 잠시 다녀오게 됐다. 하마마츠가 음악창의도시가 되게 된 배경에는 악기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적인 악기 브랜드인 '야마하'와 '가와이'가 모두 이 도시에 터를 잡고 있다.

대부분의 클래식 전문공연장에는 '스타인웨이'라는 독일 피아노가 자리하고 있다.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한 동안 국내 공연장에서는 스타인웨이가 있으면 좋은 공연장, 그렇지 못하면 그저 그런 공연장으로 구분되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별반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시장 내 입지가 탄탄하고 연주자들로부터의 신뢰가 공고해 보인다.

야마하는 이런 스타인웨이의 아성에 도전하는 거의 유일한 메이커이다.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이 만들어낸 집념의 산물이다. 마케팅도 매우 공격적이고 전략적이다. 대개의 공연장엔 홀이 두 개 이상 있다. 대극장, 소극장 같은 방식이다. 대극장은 스타인웨이에게 확실히 양보하고 작은 홀은 확실히 잡는다는 전략이다. 세계의 많은 공연장들은 야마하의 이 전략이 적용되고 있다.

한편 야마하가 차이코프스키콩쿠르 후원을 통해 국제적 인지도를 확고히 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구 소련시절 재정적으로 어려운 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 야마하를 사용하는 조건으로 전액 예산지원을 한 것은 대단한 마케팅 성공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그래서 한 동안 차이코프스키콩쿠르가 러시아건지 일본건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한편 그 정도론 성에 차지 않았던지, 1991년엔 아예 하마마츠콩쿠르를 창설해 아시아 최고 콩쿠르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오사카에서 신칸센을 타고 하마마츠역에 내려 행사가 열리는 액트시티로 가는 첫 게이트에서 제일 먼저 반겨준 것은 '가와이'피아노와 '스즈키'자동차의 전시부스였다. 이 도시가 악기와 자동차 산업에 걸고 있는 기대와 자부심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하통로를 따라 바로 연결되는 액트시티는 마치 서울에 있는 코엑스처럼 말 그대로 건물 자체가 하나의 도시이다. 하지만 모든 편의시설의 중심에 우뚝 솟은 빌딩의 모양은 하모니카를 세워 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 다시 한 번 도시정체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이 빌딩의 1층부터 3층까지를 차지하고 있는 공연장은 파이프오르간이 위치한 객석 중앙부부터 자연스런 원목 색채로 편안함을 더해 줬는데, 무엇보다 울림이 최적화돼 명료성과 쾌적성을 동시에 만족시켜 줬다. 당연히 이들이 준비한 공연은 매우 다채롭고 열정적이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종합적으로 본 받을만한 게 많았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폴란드의 어린이합창단이 벌이는 연주는 유네스코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따뜻하고 감동스러운 공연이었다. 감동과 숙제를 안고 돌아오는 길에 접한 국내 뉴스는 출국할 때보다 훨씬 험악해져 있었다. 악화일로를 걷는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성난 민심 사이로 문화예술인들의 광화문 텐트집회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칼럼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그에 따른 파장에 대해 언급하면서 어쩌면 대형 게이트로 발전할 소지가 있다고 얘길 했는데 숫제 이건 문화예술의 영역으로 국한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태로 나아가고 있어 보인다.

이번 정국에서 가장 많이 휘둘리고 한심해 보이는 곳은 문화체육관광부이다. 과연 이게 국가기관인가 싶을 만큼 사사로이 판단하고 움직인 정황이 명백하다.

하마마츠처럼 문화예술이란 장인의 집요함 같은 게 있어야 한다. 그게 간혹 '지랄 맞은 예술가'처럼 보일지라도 그게 예술가와 예술계의 특징이다. 그건 예술행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 문화행정은 여태껏 쪽박만 골라 깨고 다닌 꼴이니, 저 예술가들의 분노를 누군들 말릴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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