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일 편집국장

▲ 배창일 편집국장

중국 진나라의 정치가 이밀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나 촉한의 관리가 됐다. 촉한이 멸망하자 진무제 사마염은 그를 태자세마로 임명하려고 했지만 이밀은 이를 번번이 거절했다. 그렇지만 사마염의 요청은 끊이지 않았고 이밀은 더이상 거절할 방법이 없자 자신의 처지를 글로 써서 올리기로 했다.

이밀은 '진정표'라는 글을 통해 "저는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자애로운 부친을 여의었고, 네 살 때 어머니는 외삼촌의 권유로 개가를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저를 불쌍히 여겨 직접 길러 주셨습니다. 저의 집에는 다른 형제가 없으며, 큰 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도 없어 의지할 곳이 없어 쓸쓸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할머니께서 연로하시니 제가 없으면 누가 할머니의 여생을 돌봐 드리겠습니까? 그렇지만 제가 관직을 받지 않으면 이 또한 폐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니, 오늘 신의 처지는 정말로 낭패스럽습니다"고 했다.

이밀은 지극한 효성으로 할머니를 모셔 왔다는 점을 말하면서 자신의 관직까지 포기해야 할 정도라고 호소했다. 이밀의 간곡한 요청은 결국 받아들여졌다.

여기서 나온 말이 '낭패불감(狼狽不堪)'이다. 낭(狼)과 패(狽)는 본래 동물 이리의 이름이다. 낭은 앞다리가 길고, 패는 앞다리가 짧은 동물이다. 낭은 패가 없으면 서지 못하고, 패는 낭이 없으면 걷지 못하므로 반드시 함께 행동해야만 한다.

어떤 상황에 닥쳐 어쩔 수 없어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뜻하는 '낭패불감'. 이 고사성어와 비슷한 일이 300만원대 서민아파트 건립사업 중 발생했다. 300만원대 서민아파트 건립사업은 지난 2010년 권민호 시장이 민선5기 제7대 거제시장으로 취임한 뒤 추진하고 있는 공약사업이다. 이후 이 사업은 지난 2013년 3월 평산산업(주)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가시화 됐다.

300만원대 서민아파트 건립사업은 평산산업이 소유하고 있던 사업부지 내에 아파트를 지을 수 없던 농림지역 9만7253㎡를 포함해 사업부지 18만9370㎡를 용도지역과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1400세대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거제시가 민간사업자로부터 사업부지내 2만4111㎡를 기부채납 받아 300만원대 서민아파트 700세대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지역 시민단체 등은 민간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특혜시비, 형평성 문제 등을 거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후 2013년 12월 경남도 도시계획위원회는 민간기업 기부채납 적정성의 문제와 현행 국토관리 계획의 근간을 흔드는 난개발이 우려된다는 이유, 그리고 향후 각 시·군에서 유사한 신청이 잇따르는 등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계획을 부결시켰다.

그러나 2014년 4월 경남도 도시계획위원회는 거제시가 제출한 변경심의안을 조건부 승인했고, 이어 같은 해 6월 300만원대 서민아파트 건립사업은 거제시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함으로써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거제시도시계획위원회는 아파트 구역면적을 15만1040㎡(주거용지 3개 단지 9만5665㎡·기반시설 5만5375㎡)로 확정했다. 이 가운데 2만4093㎡가 300만원대 서민아파트 사업부지다. 300만원대 아파트 입주자 575세대 선정과 관리 운영은 주택공급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라 영구임대(200세대), 국민임대(375세대)에 해당하는 기준에 따라 입주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또 공무원 아파트 숙소(154세대)도 이곳에 들어선다.

하지만 300만원대 서민아파트 건설사를 선정하는 공개입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입찰에 참여한 3개 업체 가운데 1순위였던 업체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면서 2순위 업체가 최종 심사대상업체로 선정됐고, 이 업체가 투찰한 금액이 공사액의 92%에 달했기 때문이다.

현재 거제시는 공사비 부담 때문에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법적소송 문제 때문에 일방적으로 입찰무효를 주장할 수 없어 시의 고민은 깊어지는 모양새다. 높은 투찰율은 아파트 분양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 공개입찰이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는 조달청의 설명도 시의 행보에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300만원대 서민아파트 건설이 하세월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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