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창일 국장
'풍요롭다'의 사전적 의미는 '흠뻑 많아서 넉넉함이 있다'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추석은 늘 풍요로움의 상징이 돼 왔다. 누렇게 익은 황금들판과 탐스럽게 익은 과실이 풍요로움을 더 했다. 고향을 향하는 귀성객들의 손에는 한가득 선물이 들려 있고, 가족 맞을 채비를 하는 고향집에서는 전 부치는 냄새가 마당을 가득 채웠다.

늘 맞는 추석이지만 올해 추석은 거제시민들에게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조선경기 불황으로 구조조정에 내몰린 조선 근로자들, 이에 따른 지역 경기침체, 여기에다 생각지도 못한 콜레라 환자 발생까지. 풍요로워야 할 추석대목이지만 지역사회에 드리운 그늘이 생각보다 크기만 한 요즘이다.

지난날 외환위기 상황 속에서도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거제시가 불황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향토기업과 같은 대접을 받았던 대우조선해양은 연이어 터져 나오는 비리의혹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마치 거제시 전체가 비리 공화국으로 비춰질 정도다. 삼성중공업 역시 구조조정의 여파 속에 수주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20년 만에 지역인구가 감소하면서 조선불황의 여파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지역 중소상인들도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은지 오래다.

세계 조선 시장이 호황을 누렸던 1990년대말 이후 지역 양대 조선소에는 한 기당 1조원에 달하는 해양플랜트를 비롯해 각종 선박 수주가 잇따랐다. 선박 인도일에 맞추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기술자들이 팀을 이뤄 거제로 몰려들었다.

외환위기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끊고 전국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 등이 펼쳐지는 등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적 위기가 닥쳤을 때도 거제는 끄떡 없었다. 타 지역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발전을 거듭했다. 부동산 가격도 매년 상승곡선을 그렸다. 수 많은 아파트가 분양됐고, 우후죽순 식으로 들어선 원룸은 방을 구하지 못할 정도였다.

2006년 거제시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3만3000달러였다. 2008년에는 4만 달러 선으로 올라섰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탓으로 2009년 1인당 GRDP는 잠시 3만4000달러선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2010년부터 회복세를 보이며 2012년에는 4만3000달러까지 치솟았고 2013년에는 5만 달러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 1인당 GRDP의 배에 이르는 경제수준을 자랑했던 것이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생긴다고 너무 즐기지 말고, 나쁜 일이 생긴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라는 격언이다. 좋은 일도 언제까지 계속될 수 없고, 나쁜 일도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말이다.

현재 거제를 강타하고 있는 이 어려움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어려운 상황도 언젠가는 변하기 마련이다. 낙담과 낙심으로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다보면 현실의 변화는 요원하기만 할 뿐이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내일을 헤쳐나갈 강한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우리 거제는 역사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구해온 고장이다. 그리고 그 자부심이 시민들의 혈관 속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거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수군이 첫 승리를 달성한 옥포해전으로 풍전등화에 빠졌던 조선에 희망의 불씨를 안겼다.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던 아주독립만세 운동은 광복의 기쁨을 누리게 하는 밀알이 됐다. 6.25전쟁 당시 함경남도 흥남에서 온 10만명의 피난민을 온몸으로 보듬었고, 외환위기 당시 지역 조선업은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비온 뒤에 뜨는 무지개는 아름답다. 하지만 아름다운 무지개는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경과 고난을 정면으로 맞서며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와 실천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난날의 영화를 아쉬워만해서는 눈앞에 닥친 파고를 헤쳐 나갈 수 없다.

거제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희망의 불씨가 피어나야 한다. 그 희망의 불씨는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 모두가 만들어가야 한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