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창일 편집국장
덥다. 입추와 말복을 지났지만 폭염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거제시의 경우 지난 7월25일부터 무려 23일 동안 폭염특보가 내려졌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위와 함께 한밤중에도 25도를 웃도는 열대야는 잠못드는 밤을 선사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고 있는 리우올림픽의 열기도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폭염에 시들해진 상태다. 전국 곳곳에서 가축이 폐사하고 양식장 어류가 죽어나가고 있다. 거제시에서도 지난 18일까지 우럭, 말쥐치, 쥐치, 강도다리 등 모두 4만5000여 마리의 양식어류에 피해가 발생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7일. 거제지역에서는 상반된 두 가지 일이 벌어졌다. 한곳에서는 노동조합 창립 기념일을 맞아 노동자와 시민이 함께하는 한마당 잔치가 열렸고, 다른 한쪽에서는 체불임금과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이 집회를 갖고 무기한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대우조선노동조합은 이날 오후 5시30분 옥포매립지 사외주차장에서 노조창립 29주년을 기념하는 '시민과 함께, 조선노동자 기살리기 한마당'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는 예전과 달리 조선근로자와 시민들이 어울려 소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유명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화려한 공연을 선사하던 모습에서 변화한 것이다. 조합원 가족들의 공연 참여와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등으로 진행된 행사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됐다.

같은 시각. 채 식지 않은 한낮의 열기 속에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서는 120여명의 사람들이 집회를 벌였다. 체불임금과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는 천일기업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집회에 앞서 천일기업 노동자 비상대책위원회와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하청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는 경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체불임금 해결, 고용승계 보장, 불법적 취업방해 금지, 업체대표에 대한 구속 수사 등을 요구했다.

이어 이튿날 천일기업 근로자들은 업체대표와 총무를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천일기업 근로자들은 업체대표 A씨가 아들인 총무 B씨의 급여를 월 300만원에서 800만원으로 인상해 지급한 것을 업무상 배임으로 보고 있다.

회사 경영상태가 어려워졌다며 지난 5월부터 하청근로자의 일당을 5000원~1만원씩 삭감하면서 자신의 아들에게는 월급 인상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회사 측이 폐업과 청산을 통보한 7월18일과 5일 차이를 두고 총무 B씨가 자신 소유 아파트 대출금 1억3000만원을 상환하고 근저당설정을 해지한 것에 대해 횡령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B씨가 아파트 대출금을 상환한 날은 7월13일로 파악하고 있다. 천일기업 근로자들은 검찰이 B씨의 아파트 대출금 상환에 대한 계좌추적을 하면 자금의 출처와 횡령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천일기업 대표 A씨는 원청업체인 삼성중공업의 기성금 삭감이 경영악화의 원인이 됐다고 밝히고 있다. 임금체불 문제에 대해서는 사재를 출연해서라도 해결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측은 협력회사와 상호협의 해 기성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일방적인 단가조정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 상태다. 또 기성금에 퇴직금이 포함돼 있어 천일기업 측에서 그동안 적치한 퇴직금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선을 긋고 있다.

현재 상황은 원청업체과 협력업체, 근로자 간 진실게임에 돌입한 상태다. 어느 누구의 말이 정확한지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질 내용이다. 다만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게임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원청업체와 협력업체에서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만 몰두하다 보면 결국 근로자들의 고통만 가중될 뿐이다.

일각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협력업체에 대한 세무조사 유예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하고 있다. 기업 경쟁력 회복과 위기 극복 전념이라는 당초 취지가 흐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천일기업 근로자들은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무기한 노숙 철야농성에 돌입했다. 뜨거운 여름, 잠못드는 천일기업 근로자들과 가족들의 고통이 하루빨리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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