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일 편집국장

▲ 배창일 편집국장
거제의 별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지난 26일, 거산(巨山)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국가장으로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은 추모 열기로 가득했다. 수많은 국민들이 한평생 민주화에 헌신했던 투사로,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 지도자의 삶을 되새기며 그의 삶을 애도했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일이었던 지난 22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고, 국회의사당에는 이튿날 정부대표 분향소가 마련됐다. 거제시를 비롯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차린 분향소는 모두 221곳. 17개 광역자치단체에서 23곳, 195개 기초자치단체가 198곳을 마련했다.

빈소에는 김 전 대통령의 친지와 친구, 지인, 민주화 운동 시절 동지, 여권 인사를 비롯해 그를 탄압한 전두환 전 대통령까지 3만7400여명이 조문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정부 대표 분향소와 자치단체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각각 3329명과 19만7090명이다. 23만7000여명이 빈소와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것이다.

살아생전 김 전 대통령은 공(功)보다는 과(過)가 먼저 떠올려지는 대통령이었다. 3당 합당으로 지역주의 정치를 고착화하고, 세계화의 구호에 매몰돼 외환위기를 야기한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서거는 과(過)에 가려져 있었던 많은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 서슬 퍼런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일궈내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던 부분이 가장 먼저 조명됐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 오롯이 전진했던 그였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김 전 대통령의 말들은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14대 대통령에 당선돼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그는 전격적으로 금융 실명제를 실시하고 하나회를 해체했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며 일제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섰다.

집권 초기 90%가 넘었던 지지율은 그 시절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던 국민들의 염원이 얼마나 컸던 지를 가늠하게 한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측근 비리는 1998년 2월 퇴임한 그에게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못하게 했다.

고향 거제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 시절 고향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다수였다. 민주화의 투사로, 현대 정치사의 거목으로 평생을 살아온 김 전 대통령이었지만 쓸쓸한 퇴임 이후 그에게 등을 돌린 것은 고향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생가를 복원하고 기록전시관을 건립한 것은 불과 몇 년 전 이야기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기점으로 그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 호감도도 급등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성인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김 전 대통령에 호감이 간다는 응답률은 51%에 달했다고 한다.

지난 27일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 십수년동안 어쩌면 아버님 생애에 가장 고통스러우셨을 그 시간에 마땅히 아버님 생전에 받으셨어야 할 너무 늦어버린 찬사에 그저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은 거제에서 나서 자란 불세출의 거인(巨人)이다. 거제의 아이들이, 거제의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어야 한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의 큰 뜻을 실천한 김 전 대통령. 그의 고향 대계마을로 향하는 길 하나쯤은 '김영삼로'로 명명하자. 그 길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숭고한 삶의 가치를 영원히 되새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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