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 계간 '문장21' 책임편집위원

고요가 출렁이는 주름 깊은 밤바다.
 
달빛으로 화장한 어부 얼굴이 밝다. 집어등 불빛 아래 허리 한 번 펼 수 없어도 간간이 달빛 윤슬 어둠을 밀쳐 내고, 그물에 걸려든 적금통장을 건져 올리는 어군탐지기 엔터 키 한 번에 처자의 꿈이 뱃전에 일렁인다. 한평생 고기잡이 어렵기는 매한가지 움푹 팬 눈망울이 하얗게 어둠을 지울 햇덩이 하나 길어 올릴 쯤, 목을 뺀 갈매기 금빛을 쪼아 먹고 솟구친 은빛 물고기 포물선을 긋는다.
 
등골 휜 대학 등록금 파닥이며 서울 간다.

·시 읽기: 평자의 두 번째 시집 '내 눈빛은 전선에 머문다'(2015)에 실린 연작 사설시조이다. '풍어'는 형식면에서 자유시와 사설시조의 융합을, 내용면에서는 사설시조의 서사성과 서정성을 실험한 산물이다. 어릴 적 부산 대포만(감천항)의 풍경을 회억하며 현 시대에 맞게 새롭게 형상화했다. 부산의 작은 포구에는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어부가 많다. 풍어제(별신굿)라는 의식과 풍어에 대한 염원을 그려 내고, 그들의 고된 삶에서 솟아나는 희망의 서사를 수렴한 시이다.

'풍어 3'은 거칠고 난폭한 파도와 싸워 가며 그 바다에서 순수성을 간직한 물질과 돈을 얻고,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식구를 먹이고 공부하게끔 책임을 다하는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를 시화한 것이다. 특히 대학등록금을 대기에도 벅찬 가장의 책임감과 그 자녀에 대한 희망을 겹쳐 놓았다. 이 시처럼 우리 모두 한 집안의 가장에 대한 삶의 무게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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