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시아/ '시와표현' 시 등단

 고해를 한다
 죄질이 빈약한 항목부터 밑줄을 긋는다
 고해성사의 위력은 햇살보다
 자생 살균력이 강하다는 것,
 머릿속 민감한 기억이 초고속으로 살균된다
 망각은 접어 두었던 불편한 기억부터
 지워 버리는 습성이 있다
 
 봉헌할 땐 첫물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첫물을 아낌없이 봉헌한 걸 본 적 많다
 어머니의 장날 보따리는
 때깔 고운 진주 같은 땀방울 먼저 들고 달렸지
 되받아 온 첫물은 어둑한 밥상에서
 작은 숟가락들의 흰밥이 되었지
 희나리 때깔 당신은
 누런 삼베 한 필 걸치고 첫물이 되었을까
 
 명치 속의 죄책감이
 성호를 따라 옮겨 다닌다
 꽃잎 사이 겹겹이 접혀 있던 죄목들
 화르르 떨어진다
 어제를 지운 말간 오늘이 성당을 나선다.

·시 읽기: 시인의 돈독한 가톨릭 신앙심이 녹아들어 있다. 신앙심에 대한 성찰과 반성도 담겨 있다. 이를 시어 '고해성사, 봉헌, 첫물, 성호, 성당' 등을 통해 읽어 낼 수 있다. 특히 시어 '봉헌, 첫물'의 의미에 주목해 본다. 가톨릭에서 '봉헌'이란 하느님을 경배할 목적으로 자신과 자신의 소유물 중 '첫물'을 바치는 일을 의미한다. '첫물'이란 사람, 가축, 곡식 등 첫 수확한 것을 의미한다. 넓은 의미로 자신의 재물, 시간, 노동력 등도 봉헌의 대상이다. 우리 모두 종교를 떠나 자신에게 주어진 많고 많은 '첫물'의 의미를 더듬어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문학평론가 신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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