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인자/계룡수필 회원

왼손은 오른손이 부럽기만 해. 같이 태어났건만 늘 양지(陽地)니까.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오른손이 얼른 악수를 청하지. 어차피 왼손은 나서려는 생각도 없는데 말이야. 간혹 분에 넘치는 사람을 만날 때면 마지못해 왼손의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

그럴 때마다 얄미워 도와주고 싶지 않아. 하기 싫은 일은 왼손에게 미루고 좋은 일은 혼자 다 하려는 오른손 때문에 한두 번 속상한 게 아니거든.

왼손은 자신이 음지(陰地)라고 생각해. 오른손보다 몇 갑절 일해도 돌아오는 건 뒷전이기 때문이지. 오른손의 보조 역할만 하는데다 한마디로 심부름꾼이야.

설거지할 때도 오른손은 부드럽고 예쁜 그릇만 가려서 닦아. 계란찜을 하여 냄비가 눌어붙었거나 닦기 힘든 솥단지는 슬그머니 왼손에게 미뤄버리고. 그래서 화가 난 왼손은 솥단지에게 화풀이를 하며 빡빡 문질러대기도 하지. 덕분에 윤이 반짝반짝 난 솥단지를 보며 주인은 다음에도 이런 일은 꼭 왼손에게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지. 

어제만 해도 속상해서 오른손에게 제동을 걸었어. 오른손은 태어나서 한번도 화장실에서 뒤처리를 한 적이 없거든. 그래서 한번 고집을 부려봤어.

너도 해보라고 억지를 썼지. 오른손은 절대 못한다며 고개를 야무지게 흔들었어. 눈을 살포시 내려 깔며 고고한 척하는 것 다들 봤어야 했는데. 기다리는 주인을 더 이상 실망시킬 수 없어 왼손은 지가 하고 말았어. 어쩜 저리도 얄미울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야.

오른손의 주특기는 글을 쓰는 거야. 하얀 백지에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가 얼마나 반듯한지 왼손이 봐도 부러워. 그런데 굳이 글 못 쓰는 왼손에게 그렇게 자랑해야 할 일인가 싶어. 얼마나 뽐내는지 모른다니까. 부러워하는 왼손 보고 오른손과 똑같이 써보라 하는데, 정말 자신이 없어. 늘 궂은일을 해 왔으니 언제 글을 쓸 틈이 있었겠어. 괜히 잘난 척이야.

아이 고소해. 오른손도 실수를 하나 봐. 얼마 전에 다쳤거든. 엄살은 또 얼마나 심한지. 웬만하면 해도 될 일을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려는 거야. 왼손은 그보다 더 심하게 다쳤어도 참고 일했는데. 그날 하루 종일 왼손만 곱절로 고생했어.

전화가 왔네. 몹시 중요한 일인가 봐. 메모를 해야 했어. 주인이 다 외울 수가 없어서 받아 적어야 했지. 오른손은 또 왼손에게 미루는 거야. 손이 아파서 예쁜 글씨를 쓸 수가 없다나.

왼손은 지렁이 같은 글을 토해내면서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어. 바쁜데 빨리 적느라 무척 힘들었지. 진짜 너무해. 주인이 바쁠 땐 조금 덜 예쁘게 쓸지라도 제 할 일을 해야 하는 게 도리 아니겠어.

글 쓰는 일이 자기 적성에 딱 맞고, 천직이래. 그러면서 왼손이 아무리 오랜 동안 연습한다 하더라도 절대 자신을 따라잡지 못할 거라고 큰소리 땅땅 치더니.

어느 순간부터 왼손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뚜렷하지가 않아.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도 없고. 하는 일은 남들이 전부 천하다고 여기니 살아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잔뜩 웅크린 채로 자신을 돌아보니 손 마디마디가 거칠고 억세게 보이는 거야. 얼마나 일만 했으면 그럴까 싶어 갑자기 주인마저 서운해져. 슬며시 오른손을 보니 참 곱기도 하네. 진작 왼손도 좀 돌봐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왜 이리 비교가 되는지 몰라. 오늘 따라.

‘아, 우울해. 내 자신이 한심스러워. 깊은 심연 속으로 자꾸 빠져드는 것 같아. 그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어. 차라리 잠들고 싶어.’   

가만, 주인이 외출을 하려나 봐. 중요한 일이 있는 모양이야. 평소에 잘 안 입는 옷을 꺼내놓고 고심하는 걸 보니. 한참이나 이것저것 입어 보더니 점잖고 우아해 보이는 원피스로 결정을 내렸어.

짙은 화장은 아니지만 속눈썹도 올리고 입술도 평소와 다르네. 볼연지를 하니 화사하고 생기가 도는 것 같아. 머리도 신경을 많이 쓰는 것 있지. 정성껏 다듬어서 스프레이로 마무리하고는 거울을 한참이나 보는 거야. 거울 속의 주인이 예쁘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

기대가 돼. 비록 우울한 기분의 연속이지만, 외출을 하면 새로운 돌파구가 생길지 몰라. 그것까지는 안 바라더라도 기분 전환은 되겠지. 쉿, 조용히. 여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야. 음악이 흐르고, 은은한 조명 아래 주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어.

이윽고 주인 앞에 근사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한 다발의 장미를 안겨주고 있어. 그 순간 주인의 얼굴에 감동의 미소가 활짝 피어나고 있네.

아하, 결혼기념일이었던 거야. 그래서 남편이 한 다발의 장미를 내밀었던 거구나. 가만, 끝난 게 아니야. 리본으로 장식된 작은 상자를 주인의 손바닥에 올려놓네. 뚜껑을 여는 순간 부셔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어. 예쁘고 앙증맞은 반지 때문에. 오른손은 벌써부터 흥분되나 봐. 당연히 귀하디귀한 오른손 차지일 테니까. 왼손은 별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어. 

이런, 이변이 일어났어. 주인이 풀죽어 있는 왼손을 살짝 잡아당기는 거야. 그리곤 마디 굵은 약지 손가락에 끼워주는 것 있지. 그 때 오른손의 미세한 떨림을 봤어. 얄밉기만 하던 오른손에게 정말 미안했어. 영광을 누리는 건 당연히 오른손일거라 생각했거든.

왼손의 우울함이 깨끗이 사라졌어. 그간의 노고를 단번에 보상 받았기 때문이지. 주인은 다 알고 있었던 거야.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에 비하면 예쁘진 않아도 약지에 껴진 보석 반지가 그 허물을 다 덮어주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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