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일 편집국장

오곡백과가 익어 가을걷이가 끝나가는 늦가을. 청명한 하늘과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상쾌함을 넘어 제법 싸늘한 기운을 느끼게 하는 요즘, 지역 정치권에서 들려온 소식을 접하고 나니 날씨만큼이나 지역 정치판도 싸늘한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내용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김한표 국회의원이 14년 전 한 지인으로부터 빌린 현금 2억 원을 최근 이자까지 붙여 갚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거액의 자금을 두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14년 전인 2000년은 김 의원이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던 때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당시 김 의원이 지인의 소개로 여성 사업가 A씨에게 현금 2억원을 빌렸고 최근까지 두 사람 모두 이 사실을 함구해 왔다는 것입니다. A씨는 현직 시의원인 남편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 의원이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 한 뒤 거제경찰서장 재임 당시 빌렸던 돈이 문제가 돼 뇌물죄로 구속되는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금전거래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돌변했습니다. 지난 6·4 지방선거 직후 A씨는 김 의원에게 14년 전 빌렸던 돈과 이자를 지급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시의원 재선에 성공한 A씨의 남편이 김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수모를 당한 사실이 A씨의 귀에 전해지면서 14년 전의 금전거래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A씨의 요구에 김 의원은 한 달여 뒤 대리인을 통해 원금 2억 원에 연 5%에 해당하는 14년치 은행이자 1억4725만 원을 더해 3억4725만 원을 A씨의 계좌에 입금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시중에 알려지자 '고의로 재산신고를 누락했다' '채무변제를 위해 부적절한 자금이 조성됐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다'라는 등의 각종 추측성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새누리당 당원협의회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습니다. 당원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김 의원의 채무변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각종 의혹에 대해서는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의문점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14년 동안 의리(?)를 지켜온 A씨가 왜 이 시점에서 돈의 지급을 요구했는지, 김 의원이 민법상 사인간의 금전거래 시효(10년)가 지난 돈을 왜 갚았는지, 한 달 만에 3억원이 넘는 거액의 돈을 김 의원이 어떻게 마련했는지, 혹 이번 사건의 배후는 없는지….

초선 국회의원으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며 국회와 지역구를 누비고 있는 김 의원이기에 이번 일은 김 의원에게도, 또 거제시민에게도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개인적인 채무라고는 하지만 공인인 국회의원이라면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를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지요.

혹 김 의원이 2억원이라는 돈을 갚지 않는 동안 A씨에게 혹시라도 모를 대가성 이익을 돌려줬다라고 한다면 거제시민의 실망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실망을 넘어 지역정치권에 대한 혐오로 발전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공천권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공천혁명을 이뤄냈던 김 의원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A씨 역시 이번 일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입니다. 남편의 수모에 분개해 벌인 일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14년 동안 묵혀뒀던 2억원이라는 돈이 일종의 보험적 성격이었다면 이번 일은 보험을 해약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 이상 김 의원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반증일 테지요. 1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김 의원과 일종의 의리를 지켜온 A씨가 이제 와서, 왜 남편의 정치적 생명을 건 모험을 했을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제20대 총선이 1년 5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불거진 이번 일이 지역 정가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을 위한 막후작업이 벌어지며 일종의 합종연횡이 이뤄진 것이라면 지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혐오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이번 일로 지역 정치권과 거제시민의 마음속에 생채기가 났습니다. 다만 이 생채기가 더 큰 종기로 커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지만 정치인은 다음 선거만 생각한다는 말이 더욱 와닿는 늦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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