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희 계룡수필문학회원

내 집 거실은 전통찻집이라 불리기도 하고, 또 민속박물관이라고도 한다. 차를 즐기는 남편 덕에 차구가 제법 있고, 너절한 옛것들이 더러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곳을 갤러리라 한다. 크기가 다양한 그림과 사진이 스무 점이 넘게 걸려 있고, 돌이나 구리 나무에 새긴 조각품이며, 서예 수예 공예품들이 적잖이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굵은 대나무에 엮어 천정에 매달아논 바람 불면 소리 내는 것들도 늘어져 있고 여러 나라의 소품과 민속인형, 신발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지럽기도 하고 오순도순 정겹기도 하다. 

이것들 대다수가 배낭여행을 하면서 구해온 수집품이다. 물론 소장의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며 값나가고 귀한 것도 결코 없다. 하지만 내게는 각별하고 소중하여 모두가 아끼는 것들이다.

그것들도 심심한지 자주 내게 말을 걸어 함께 하길 원하는 눈치다. 온종일 갤러리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면 편안하고 행복하다.

켜켜이 쌓아올린 내 발자취의 궤적을 돌아볼 수 있고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내 집에 오게 된 것들의 내력이 되살아나곤 한다.

깐짜나부리(태국의 도시) 아저씨가 생각난다. 강을 찾아가다 쓰러져가는 난전을 지나게 되었다.

콰이강 철교가 무너져 내리는 극적인 순간을 공예품으로 표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관광지라 사 가는 외국인이 더러 있다 하였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를 함께 보냈다.

작업하는 걸 구경하며 사포질도 하고 소용되는 물품도 챙겨주고 물감과 붓도 집어주었다.

조수가 되고 말동무도 되었다. 덜거덕거리는 얼음상자에 유일하게 들어 있는 시원한 물 한 사발을 통째로 준다.

더 대접할 게 없음이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른다. 작품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집나간 아내 이야기까지 구수하다.

콰이강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무로 만든 철교와 자동차 번호판에 그린 소품 세 점을 구입했다.

요구하는 금액이 너무도 적은 오달러라 난감해 하고 있는데 아저씨는 자기 작품 대여섯 점을 주섬주섬 더 싼다.

장미그림도 있고, 태국 전통목각도 있고, 다리가 파괴 될 때 찍은 현장 사진도 있다. 사진을 보며 다리를 만들기에 이만은 극구 사양했으나 역사적인 사진이니 꼭 가져가라 막무가내다.

함께 한 기쁨의 선물이란다. 누구라도 그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면 기꺼이 줘버린단다.
그러니 밤낮으로 만들어도 밥술이나 먹겠는가. 아내마저 견디지 못한 그가 걱정되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좋은 작품 많이 만들어 주겠다고 다시 오라 손가락을 건다. 

예술적 가치가 없은들 대수겠는가.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애착이 가고 귀하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산처럼 깨끗하고 욕심 없이 사는 그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립다. 물론 골동품상이나 중고 점, 벼룩시장, 초대형 슈퍼마켓에서 구한 것들도 없지 않지만 갤러리 소품들 대다수가 이와 유사한 연유로 내 것이 되었다, 돈의 값어치가 아닌 함께 나눈 시간과 낯선 외국인에게 나눠 준 따듯한 정을 떠올리게 하는 내 자식 같은 소품들이다.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여행하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내 갤러리가 채워지는 것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내게 준 정표가 쌓여감이리라.

소중히 간직하며 추억할 이유가 분명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행은 계속될 터이니 앞으로도 갤러리의 새 식구들은 해마다 늘어날 것이다.

오늘도 한가로이 이들과 함께 하며 올 여행지인 남미대륙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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