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이겨내는 힘 '숭어국찜'…바다의 힘과 산나물의 향기 만나 '따봉'
파닥이는 은빛 물결 외포항 '봄멸치'…고소한 육질에 막걸리 식초로 '새콤'

새봄의 진객 동부면 '병아리'…무침으로, 전으로, 국으로 전국 미식가 '손짓'
춘삼월 음식 대명사 '도다리쑥국'…겨우 내 껄끄러워진 입맛 한방에 '정리'

거제도 봄의 시작은 숭어와 함께

거제도에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는 많다. 대금산의 진달래, 공곶이의 수선화, 국도변 벚꽃 등은 거제의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바다에도 봄 전령사는 있다. 숭어가 그 주인공이다. 봄이 되면 거제 앞 바다로 몰려드는 숭어떼. 바다 위를 뛰어오르는 힘찬 몸짓에 한번 반하고 그 맛에 두 번 반하는 생선이 거제도 봄숭어다. 봄숭어는 싱싱한 숭어회부터 숭어찜·숭어김치찌게·숭어미역국 등 다양한 음식으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숭어는 산란기가 되면 강 하류나 포구로 돌아오는 습성이 있다. 한반도에서 제주부터 동서남해를 막론하고 숭어가 잡히지만 거제의 숭어잡이는 남다르다. 수 만 마리 숭어들이 바다로 내려가는 통로인 산 아래에 커다란 망을 놓고, 벼랑 끝 망루에서 숭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인다. 망을 보는 망수는 미세한 바다 빛깔의 변화를 보고 숭어 떼가 왔음을 민감하게 알아차린다. 단 한 번의 지시로 그물을 끌어올리면 싱싱한 봄숭어가 그물을 한가득 채운다. 일명 '숭어둘이'라고 하는 육소장망 숭어잡이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는 숭어를 치어라 해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서 제1이다'라고 적혀 있다. 예로부터 음식으로써 인정받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숭어는 먹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특히 거제의 봄숭어는 그 맛과 영양에서 으뜸가는 음식이다. 갓 잡은 싱싱한 숭어를 회쳐서 먹는 숭어회, 묵은지 외에는 다른 양념을 하지 않고 숭어만을 넣어 만든 숭어김치찌개, 양념장을 넣고 져낸 숭어건찜, 꾸덕꾸덕 말린 숭어찜, 봄나물과 어우러진 숭어국찜 등. 맛도 이름도 다양한 숭어음식들은 거제의 봄이 주는 최고의 보양식이다.

이 가운데 숭어국찜은 바다의 봄맛인 숭어와 대지의 봄맛인 산나물이 만나 만들어낸 특별한 음식이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숭어를 이용해 밥 대신 먹었던 것이 오늘날 최고의 건강식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일운면에 가면 보릿고개 때 숭어로 음식을 해먹으면서 어려움을 나누던 아름다운 전통이 아직 남아있다.

고소함에 새콤함 더해진 봄멸의 반란

대금산에 진달래가 분홍 빛 수를 놓을 무렵이면 인근 외포항도 생기에 가득찬다. 거제의 봄 별미 중 빼놓을 수 없는 봄 멸치 때문이다. 봄에 난 멸치라 해서 '봄멸'이라고도 부른다. 작은 몸집에 남해 바다의 싱싱한 봄기운을 가득 담고 있어 집채만 한 고래나 월척이 부럽지 않다.

국내 3대 멸치 생산지로는 기장 대변, 남해 미조, 거제 외포를 꼽을 수 있다. 그중 거제 외포 멸치는 그 맛이 고소하고 육질이 부드러워 명품으로 꼽힌다.

은빛 비늘 반짝이는 싱싱한 멸치는 부드럽고 고소한 게 횟감으로도 그만이며, 얼큰하게 끓여내는 찌개는 밥반찬은 물론 소주 한 잔 걸치기에 최고다. 미나리와 양배추 깻잎 당근 상추 등 신선한 채소를 넣고 매콤한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막걸리 식초를 이용해 멸치를 잘 씻고, 초고추장에도 이 식초를 넣어야 제대로 된 무침을 맛볼 수 있다. 특히 방풍 원추리 머위 두릅 세발나물 등 봄나물에 싸 먹는 봄 멸치는 하나가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를 정도다.

신선한 봄나물에 봄멸을 넣어 만들어 먹는 찜은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고소한 멸치의 맛에 향긋한 봄나물의 향취가 어우러져 잃었던 입맛을 찾아 준다. 춘공증을 막아 주는 비타민 섭취에도 그만이어서 일석이조다. 싱싱한 바다의 봄기운과 육지의 파릇한 봄나물이 어우러지는 외포항에 가면 거제도의 봄을 만끽할 수 있다.

딱 이맘때만 만날 수 있는 사백어의 변신

3월이 되면 거제지역 남부연안을 찾아드는 반가운 봄 손님이 있다. 죽은 후에 몸이 흰색으로 변한다해 이름 붙여진 '사백어'가 그 주인공이다. 지역민들에게 병아리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사백어는 3월 초순부터 4월 초순까지 딱 한 달 가량만 맛 볼 수 있는 봄의 진객이다.

사백어는 무침과 부침개·국으로 먹는다. 파 미나리 배 등 갖은 채소와 초고추장으로 버무리는 사백어 무침은 만드는 방법도 특이하다. 채소와 초고추장이 들어 있는 대접에 사백어를 국자로 퍼 넣은 뒤 뚜껑만 닫으면 된다. 귀찮게 따로 비빌 필요도 없이 사백어들끼리 알아서 초무침을 만들어 준다. 담백하고 살이 연해 씹지 않아도 그대로 목젖을 타고 넘어갈 정도다.

사백어 부침개는 어린아이들과 여성들이 즐기기에 그만이다. 작은 크기지만 한 입 베어 먹으면 온몸에 고소함이 퍼진다. 사백어 무침과 부침개는 거제고로쇠 물로 담근 고로쇠 막걸리와 찰떡궁합이다.

담백하고 깔끔한 국물 맛이 일품인 사백어 국은 주당들이 일순위로 찾는 음식이다. 술 먹고 아픈 속을 달래는 데는 사백어국 만한 것이 없다.

거제 연안에 봄바람이 불어오면 잊지 않고 지역 하천을 찾아주는 반가운 봄 손님. 회무침으로, 부침개로, 국으로 입맛을 사로잡는 병아리는 그래서 거제도 봄의 진객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환상궁합으로 생기 돋우는 도다리의 유혹

봄철 대표 어족으로 도다리를 꼽을 수 있다. 거제에서는 이맘 때 싱싱한 도다리쑥국을 최고의 별미로 꼽는다. 쌀뜨물에 된장을 풀고 싱싱한 도다리와 갓 뜯은 쑥을 넣어 끓여내는 것으로 도다리와 봄쑥의 궁합이 환상이다. 야들야들한 도다리 살과 향긋한 쑥 내음이 함께 어우러지니 시원한 국물 맛에 겨우내 돌아선 입맛을 단번에 되돌릴 법하다.

"봄에 도다리쑥국 세 번만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서 정제(부엌) 문턱을 못 넘는다"라는 말일 있을 정도다.

도다리쑥국을 꼭 봄에 먹어야 하는 이유는 쑥 때문이기도 하다. 봄이 지나면 쑥은 쓴맛이 강해져 국에 넣을 수 없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쑥은 야생 쑥에 비해 향이 덜하고 야생 쑥이라도 냉동하면 향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이다.

도다리쑥국은 원재료 맛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술 뜨기도 전에 진한 쑥 향에 취해 버린다. 도다리 살은 부드럽고 청양고추의 알싸함이 더해진 담백한 국물은 시원하게 넘어간다.

겨우내 껄끄러워진 입맛을 일순에 되돌려 놓는 도다리쑥국. 늘 친근한 도다리와 추운 겨울을 이기고 싹을 틔운 봄 쑥이 고마울 뿐이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