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논설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꽤 오래 전에 폐교가 된 어느 초등학교 시설을 지나다가 눈길을 끄는 장면에 발을 멈추었다. 학교 운동장을 채우고 단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웬 젊은이 두 명을 에워싸고 서로 자리다툼 하듯 간격을 좁히는 모습이었다.

요란하게 내 걸린 현수막의 내용으로 보아 무슨 수사기관에 협조하는 지역 단체의 봉사행사장이란 직감이 들었지만 행사 말미에 들어 선 젊은 남녀가 수사관이란 걸 안 것은 다소 멍청한 안목의 소치였다.

흰머리가 성성한 지역의 알만한 인사들이 자녀 같은 수사관을 중심으로 얼굴을 들이대는 모습에서 못 볼 걸 보았다는 역겨운 심경이 울컥해 졌다. 곁의 후배가 '저거 어디선가 본 옛날 사진 포즈 아닌가요' 하고 중얼거렸다. 그랬다.

일제 강점기에 제복을 입고 완장을 찬 일본 관리를 중심으로 빛바랜 사진수첩 속의 인물들 같다는 그 느낌이었다. '아직'도가 아니라 최근에 목격한 지역 행사에서 드러난 일이었다. 가끔 인허가를 주관하는 행정부서에서 무슨 죄인마냥 쩔쩔 매고 물러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가슴은 답답하고, 어찌 대처할 바를 몰라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그래도 관청을 드나들기 위해 평소답지 않게 말끔히 차려 입은 외관이 어색해 보인다.

웬 일이냐고 물었을 때 몇 번째 드나들지만 '그 놈의 조례라는 설명을 어찌 해석해야 좋을지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는 대답이다.

인허가에 관한 법령이나 조례가 당연히 까다롭고 따질 일이 있는 건 당연하겠지만 늘 그런 설명을 들어 본 사람들은 대체 그렇게 내미는 조례가 인허가를 위한 바탕인지, 해주지 않으려고 만든 바탕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데 있다.

지금 정부에서 대통령이 앞장서 혁신을 강조하고 있지만 거기에 참석한 관료들의 표정이나 관료사회의 움직임은 국정최고 책임자의 주창과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행정공무원이 인허가의 여부를 무슨 권한을 쥐고 있는 양 착각하는 구시대적 봉건관료의식이 여전히 민주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자신이 받는 철밥통의 혜택이 누구로부터 나오는 건지조차 모른다는 얘기다.

비뚤어진 관료의식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어린 수사관을 일제 식 '영감' 대우하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런 작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것도 시골 무지랭이가 아니고, 좀 배웠고 살만한 축에 드는 사람들이 무슨 단체를 만들어 그런 관료들을 아는 게 대단한 배경이나 힘이 되는 양 으스대는 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힌 관료주의의 위상은 재미를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런 부류들이 만약 나라의 안보를 담당할 지경이라도 되면 힘을 가진 어느 나라에도 빌붙어 사대주의를 만들고 주체를 팔아먹는 모리배들을 양산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분수가 공동체에 대한 봉사자여야 하고, 그 분수부터 배워야 공직에 나설 수 있게 교육되어 있지 않은 이 부조리한 공직사회의 폐단이 고쳐지지 않는 한, 또 그런 환경을 조성할 수 없게 부추기는 모리배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혁신이라고 부르짖는 사회정의는 요원할 따름이다.

교육이라는 인성의 향상 훈련이 우리 사회가 나아 갈 바와 동떨어진 상업관료주의, 관료이기주의로 치닫는 배경에는 진정한 교육의 부재와 분수를 가르치지 않는 관료사회의 입문과정부터 그 책임이 있다.

아직도 일제식 무슨 사무관이니, 서기관이니, 이사관을 함부로 들이대는 벼슬의식과, 역량은 뒷전이고 인사 때마다 배경을 찾고 줄서기에 눈길을 주는 곡학아세의 그릇된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혁신의 바탕은 요원하다.

먼저 정부 때부터 행정구도 개편을 떠들어대다가 사라져버린 이유를 알 길이 없고, 구조적이고 기초적인 모순을 팽개치고 지엽적인 현상이나 결과를 갖고 변하지 않는다고 우격다짐하는 방식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시장바닥을 지나다가 어쩐지 상해보이거나 평소 맛이 가지 않는 생선을 파는 난전에서 식단을 선택하라는 식의 선거판을 연상하고 있다.

공직자의 올바른 식견이나 자세가 아닌 사람들을 관청에 들여 놓고 올바른 행정을 기대하는 세상이거나, 올바른 행정사회를 바란다는 사람들이 앞장 서 식민시대의 근성을 버리지 않는 비굴하고도 천한 행세를 자처하는 행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비뚤어진 관료의식의 변화는 오지 않는다.

지금 이런 마음은 나라의 일이거나 지방의 일이거나 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스스로의 위상을 살펴봐야 할 현실적인 문제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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