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논설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상수도 관리부서의 어느 직원이 높은 양반의 초도순시를 대비해서 눈도장을 찍을 만한 아이디어 하나를 내 놓았다.

관내 수돗물 소비자들, 가가호호 주민들에게 현재 마시고 있는 수돗물의 정도에 대한 질문서를 돌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수질 개선에 참고한다는 발상이었다. 겨울 가뭄으로 수질의 상태가 심각했던 당시 이 발상은 그럴듯한 것이었다. 그는 질문서에 현재 마시고 있는 수질의 상태를 3등분으로 정리했다.

'좋음'과 ' '나쁨'과, '모르겠다'는 단순한 평가였다. 브리핑을 받던 그 높은 분은 수질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이 대목에 와서 불 같이 화를 내며 단체장을 꾸짖었다.

대체 주민들을 뭘로 알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추게 할 것이냐고 단순하고 의례적인 그 질문서를 내동댕이 쳤다.

수질을 알기 위해서는 수돗물에 무슨 이물질이 있다거나, 소독 냄새가 어느 정도인지, 구체적인 사례와 상태의 표현 없이 단순하고 상투적인 질문을 하는 행정 태도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 일은 무려 20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그런데 요즘 가끔 TV를 보면 당시 수준의 고전적인(?) 사람들이 일기예보를 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날아드는 미세 먼지로 알려진 대기중의 스모그 상태를 알리면서 '약간 나쁨'과 '많이 나쁨'의 무성의하고 상투적인 양극적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그런 정도의 예보라면 하나 마나한 일이다. 서쪽을 한 번 힐끗 쳐다보기만 해도 알 정도를 갖고 무슨 조사라도 발표하듯 예보를 한다. 대체 저 답답한 공기를 호흡해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상태를 짐작하고 무슨 정도의 대비를 해야하는 상태인지 모를 해괴한 표현을 하면서 똑 같은 단어를 매일 반복한다.

그러는 동안 대기는 그들의 표현과 상관없이 더 짙어지기도 하고 맑아지기도 한다. 옛날 무성영화를 상영하던 시절 'Key'라는 외국영화를 광고하던 변사 한 분이 확성기로 시내를 돌면서 "Key를 보러 오이소. 일명 '쎗데'라고 합니다"라고 외쳐대던 우스꽝스런 해설을 생각하면 그건 그나마 해학적인 센스라도 있는 영화 상영 예고였다.

대체 디지털문명의 감지와 변화능력이 첨예화되고 있는 오늘에 와서 비가 오는 수준의 스모그상태를 표현하겠다는 저 한심한 예고를 예사로 해대는 사람들의 역할 기여는 어느 수준이라고 해야 옳을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있다.지금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국가투자기관이나 공기업의 사회기여도가 낙제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근무하는 집단의 한심하고 부도덕한 일상을 양심고백으로 늘어놓으면서 세인들이 이를 두고 부조리한 철밥통으로 여긴다고 부끄러워 했다.

'약간 나쁨'과 '많이 나쁨'을 발표하는 기상예보관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치열하게 기업정신으로 투쟁하거나 땀 흘려 일하지도 않으면서 개개인의 가족사에 연관된 온갖 복지수당을 만들고, 고액의 연봉을 책정하면서 공공투자의 근본을 흔들어버린 저들은 분명 범죄자들이다.

나라 빚이 얼마 되든, 서민들이 같은 시간에 어떤 고통에 허우적이든 내 알바 아니라는 부도덕과 철면피를 보여도 간섭할 사람조차 없었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 뿔나듯' 무슨 공공기관이나 단체랍시고 연수원이다 복지관이다 해서 풍광이 좋은 곳을 찾아 별장 만들듯 시설투지를 해놓고 눈총이 근지러워 무슨 혜택 주둣 인근 마을주민들에게 싼값에 이용을 권장하는 곳이 생겨났다.

당연히 저들의 잔치에는 기웃거리기 힘든 곳이다. 전국에 웬만한 시설들의 정체가 이런 기관이나 단체들의 주말 놀이터로 변해왔다.

뒤늦게 정부가 제동을 걸고 혁신을 부르짖지만 한 번 잘못 길들여진 버릇을 바로 잡는 데는 몇 배의 호된 회초리가 필요한 지경이다.

TV를 보다가 혀를 차며 채널을 돌리던 어느 분은 저런 것들이 기상을 분석하고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목표치가 대체 어떤 것이냐고 필자에게 반문했다.

문명의 첨단장비들이 디지털시대로 접어들었고, 하늘에는 기상위성이 떠다니며, 건강을 염려하는 예방의학의 채널들을 만지는 실버세대의 눈초리가 나날이 늘어 가는데 오늘은 스모그마스크라도 미리 챙기시라고 제대로 된 예방기능조차 알리지 못하는 저들의 무료하고 도식적인 예보가 우리 사회의 어떤 병폐를 대변하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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