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의 가장 큰 정치적 화두는 지방선거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대선이나 총선보다 민생과 지역구도에 훨씬 지대한 변화와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이 정치적 과제를 제대로 치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선거라는 게 판짜기에 따라 그 양태가 세모꼴이 되거나 네모꼴이 되는 변수가 있게 마련이어서 선거구역이나 후보자의 입지에 의해 유권자의 선택 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맹점을 갖고 있다. 그 대표적인 바탕이 정당에 의한 후보 공천이다.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함께 등장한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정당공천을 통한 의회구성과 단체장의 입지를 두고 오랜 논란거리가 계속되어 왔다.

그래서 급기야는 지난 대선을 전후로 여야가 하나같이 기초단체의 정당공천 배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고, 그게 허언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기초의원이나 단체장이 정당정치의 하수인 노릇에서 벗어나 지역봉사의 틀을 갖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지금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이유는 뻔하다. 기득권을 놓을 수 없다는 욕심과 아전인수의 논리 때문이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 둔 격으로 그런 선거판 짜기를 해보라고 국회에 무슨 위원회를 만들 때부터가 문제였다. 기초단체의 정당공천 배제를 희망하는 국민적 여론에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인들의 입지를 모르고 주장한 사안이 아니라 그 보다 더 소중한 지방정치의 미래와 가치를 갈등과 대립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자는 취지였다. 그런 막중한 기대를 접어두고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이 저들끼리 모여 아전인수식 잇속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었으니 결과를 기다려 온 지역민들의 허탈감을 대체 어찌해야 좋을지 막막하다.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주먹질 금지법인지, 밥그릇보호법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불과 한 해 전에, 혹은 몇 달 전에 범 정치권이 한 약속을 헌신짝 던지듯 버리는 사람들이 신뢰와 원칙을 운운하고 있다면 국민들에 대한 오만불손이 이만저만 아니다.

공천구도를 이렇듯 기득권에 맡기다보면 거기에 동참해야 할 후보들의 행보가 기득권 눈치 살피기에 몰리고 민생의 소리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지금 국민들이 분노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분노란 선거를 통해 정치세력을 만들고, 인사를 통해 정부를 구성하는 일들이 어째서 매사 저들 코드대로 아전인수고 자업자득으로만 가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늘상 입으로 국민을 들먹이고, 민생을 팔고, 신뢰와 민주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선거구도나 인사와 같이 결정적인 일에서 제멋대로인지 대답해 보아야 한다.

엊그제 한 약속을 무슨 상황이 바뀌었다고 함부로 어기고 뒷걸음을 치는지 정당한 대답이 있어야 한다.

그저 오르락내리락 엿장수 가위질처럼 만드는 여론조사라는 걸 빙자해서 지지도가 있으면 금새 오만방자해지고, 지지도가 떨어지면 엉뚱한 변명으로 위장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선거판을 만들어 보라고 맡겨 놓으니 위헌까지 들이대며 저들의 안주를 우선하는 변명으로 공천 강행을 고집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오래전부터 정당민주화를 위해 상향식 공천이나 기초단체의 공천배제를 들고 나왔던 정치쇄신과는 표리부동하기 그지없는 배신적 작태다.

이미 이런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선거를 앞둔 지역마다에서 예상 후보자들을 줄 세우고 기차놀이 하듯 의정보고회라는 걸 보란 듯이 하고 다니는 진풍경이 행해졌다. 과히 공천의 위세를 공식화하는 처사다.

지방정치의 민주화라는 슬로건이 아직까지 휘둘러대는 기득권의 헌 칼에 무참하게 찢겨버리는 장면 같아서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도무지 변화를 외면하는 기득권의 저런 횡포를 바라보면서 지금 지방자치가 선진화 된 나라들에서 마치 행사장의 자원봉사자들처럼 이웃을 위해 헌신하는 지방의원들과 벼슬아치 흉내를 내고 설쳐대는 우리네 처지를 극명하게 떠 올려 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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