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땅이 울리면 가슴이 뛰고
구름이 엇갈려 달리면 머리칼이 날리던
그 어린 날 넓고 푸르던 꿈속에
 
당신은 이승의 마을을 돌아
말 한 필 내게 주시고
산이 되어 물러 앉으시도다.
 
그러시고 耳順을 지난 밤 꿈속에 
서너살 박이던 그때의 날 안으시고

무어라 이르러 오셨더이까.
병 든 채 고향 동구 밖에 매여 있던 내 말을 보셨더이까.
 
오, 나의 조부여.
피와 살을 주시고
먹을 갈고 붓을 주셨으니
그처럼 살아라 이르셨더이까.
데려 간 내 누이는 어찌 살고
舍利된 세월의 그 영롱한 눈물은 누가 꿰어 달아 난 것입니까.
오셔도 날 보지 말으시고 동구 밖 그 말이나
곱게 타일러 데려 주소서.
이제 그 말을 타고
속세의 아우성을 헤치면서
숨 찬 목숨의 언덕을 지나
본래 물이고 흙이었던 세월을 다 거슬러
다 끊어진 인연의 벼랑에 서서
거기, 生滅의 壁에 새겨진 命 하나 꺼내들고
내 모습을 찾아 외치리이다.
 
돌아서고 다시 돌아 서 살 곳이 없는 이대로
훠이 훠이 날 버리고 가라고
꿈이 무너지게 외치리이다.

                           - 詩 <邂逅의 꿈> 이아석
 
또 한 해가 간다. 자연의 時空이야 마냥 오가고 변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사의 질곡들과 삶의 번뇌는 여전하여 어김없이 회한으로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아야 한다.

몇 년 전엔가 그런 歲暮의 새벽 꿈결에 찾아오신 조부를 뵈었다.

늘 영정에 결려있는 두루마기 차림으로 어린 날 무릎에 안으시고 용케도 그많은 병고를 이겨내고 질박하지만 제를 드리는 손주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것이 육정이었고, 선천의 가르침인 것을 뒤늦게 느끼고 나서야 아직도 서너살 박이로 어리게 살아가는 자손일 뿐임을 절감할 수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고, 우리들의 조부가 살았고 묻혀있는 땅이 곧 향토임을 깨닫는다.

누군가는 우리를 실은 이 땅덩이가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온 시간일 뿐인데 오가는 날짜를 두고 뭐 그렇게 감상에 젖느냐고 핀잔하지만  어차피 시공時空의 섭리대로 살다가야 하는 우리 생애의 팔자는 오가는 세월의 회한이 있고, 그보다 더 빠르게 변해가는 환경과 인심에 대한 여한이 사무치는 것이다.

그래서 어김없이 이 한해도 일상적인 칼럼 대신 詩  한 수로 인사를 대신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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