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역마다 약간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어릴 적 가장 먼저 접한 장 자리 인물이 동네 구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당시 구장님은 당연히 친구 또래 아버님이고 솔직히 그 직책이 뭘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대단히 위트가 넘치고 활발했던 분이어서 지금도 남다른 기억을 들춘다.

길을 가다 마주쳐 '어데 가십니꺼?' 하고 인사를 하면 '응, 앞으로 간다'고 태연히 말씀하던 분이었다.

당시 구장을 선거로 뽑았는지, 추대를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지금도 그 마을에는 구장을 선거로 채택하고 있다.

행정단위로 치면 이장이라는 직제가 있어 구장 선거가 어릴 적 학반의 반장 외 분단장 선거라는 생각을 갖곤 하면서 불과 많지도 않은 이웃끼리 그런 자리를 두고 꼭 선거를 해야 하는 지 궁금해졌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에서 굳이 선거를 하지 않아도 좋을 단체나 직위를 두고 마치 선거가 민주방식의 최상인양 충돌하는 현상에 익숙해 있지만 말이다.

구장 선거에서 한번쯤 더 임기를 했으면 평소 생각했던 포부를 풀어 볼 것인데 다시 나가봐야 승산이 없다고 말리는 주변의 권고로 출마를 접은 분을 만났다.

구장 연임에 대한 미련을 괜히 소붓잔에다 들이 붓는 그는 평생 초등학교 분단장과 구장이 경합을 통해 당선된 유일한 감투였다고 회고하면서 구장 업적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동네 돈 띵가 묵은 적이 없다' 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리고 적어도 구장 선거는 무슨 이념 논쟁이나 댓글도 없고 금권 개입도 없는 뻔한 선거여서 해 볼만 하다는 거였지만 그래도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이웃들에 대한 분한 마음으로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라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

소박하고 소탈하며 진솔한 그의 표정에서 과연 이웃끼리 선거를 치르면서까지 마을 봉사자를 선택해야 옳은지, 아닌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무슨 정당공천이다, 금권 선거다 해서 말만 들어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지방선거들 보다는 훨씬 투명하고 솔직함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차제에 지금 하루가 멀다 하고 치르는 선거문화에 대한 성찰과 반론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이웃과 시민을 향한 애정과 봉사보다는 정당 줄서기가 먼저인 자세로 선택을 받겠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정체가 과연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고, 거기에 수반되는 비용과 부정한 거래들이 계속되는 선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내년 1월로 활동시한이 정해진 국회정치개혁특위가 도 다시 기득권과 변화의 타협으로 실망을 주게 될지, 국민의 기대와 염원에 부응할지는 아직 모른다.

지금 그런 어정쩡한 전망 때문에 출마를 두고 망설이는 많은 후보들이 있겠지만 열 번을 바꾸어도 시세와 민심에 알맞은 선거문화의 개선은 이뤄져야 한다.

동네 구장 선거만도 못한 추잡하고 모순된 선거제도와 방식으로는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순도순 모여 겸양과 예절로 추대해도 가능할 이웃 간의 논의를 선거로 해결한다거나 무슨 전문분야와 단체에서 경영인과 지도자를 마냥 선거로 선택하는 버릇을 키웠다가 그 논리를 비약시킨다면 나중에는 회사의 직급들을 선거로 선택하거나 가족의 가장을 선거로 결정하는 꼴볼견이 만들어 질지도 모를 해괴한 현상이 생길 판이다.

필자는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제발 우리 지역에서만이라도 더 이상 시민들의 권익과 자존심에 먹칠을 하지 않는 행사가 되도록 정당공천의 폐해를 줄이고 그런 폐단에 편승해서 설쳐대던 후보들이 아닌, 새롭고 참신한 봉사자들로 민심을 모을 수 있는 계기를 삼았으면 싶다.

굳이 실명을 거론해가며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대개의 여론이 뻔히 알만한 그런 인사들은 이제 지방정치의 활성화와 시민적 여망을 위해 스스로의 입지를 자제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직도 지방의 살림살이가 정당배경을 들먹이고 연줄을 위해 검은 돈을 거래해가며 개인의 영달을 위한 교두보처럼 여기는 돼 먹지 않은 후보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마지막 남은 애향심에 호소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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