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목 장동마을「슈퍼 산해종합식품」
34년 동안 장동마을 지키는 한결같은 소나무…마을 어르신들 쉼터로 '으뜸'

어른들에겐 동네 소식의 장이자 아이들에겐 엄마 몰래 외상으로 쮸쮸바를 사먹다 들켜 혼쭐이 나곤 했던 곳. 아련한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바로 구멍가게다.

동네 구멍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어린 날의 추억에 젖어든다. 아침이면 아버지의 면도날 심부름으로, 저녁이면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두부나 콩나물을 사기 위해 들렀던 곳.

거스름돈이 남을라 치면 오원을 주고 사먹던 큰 눈깔사탕이 그렇게 달고 맛나던 그 시절. 구멍가게에는 힘들게 말을 꺼내지 않아도 외상 장부를 꺼내 척척 적어 내려가던 인심이 숨어있다.

라면 60원, 라면땅 10원. 국민학교 시절 짱구·라면땅 한 봉지 사는 날이면 뿌듯했던 기억들. 하나 둘 구멍가게가 사라지면서 우리의 추억에도 구멍이 하나 둘 숭숭 뚫리는 듯하다.

우리들의 보물창고 구멍가게를 34년간 지켜온 곳이 있었으니 '슈퍼 산해종합식품 (대표 김미선)'이다. 스물여덟, 제2의 전성기라는 결혼과 함께 34년 전 논이었던 부지 30평을 매입해 집을 올리며 장사를 시작했다는 김 대표.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빠져나가며 마을이 활기가 잃어가는 와중에도 꿋꿋이 이곳에 활기를 불어 넣어준 곳이다.

"예전에는 한 학년에 100명이 넘고 전교생이 800명이나 됐는데 요즘은 한 학급에 20명은 될라나 몰라."

불과 15년 전만 해도 아이들이 소풍을 갈 때면 김밥에 넣을 재료들을 산다고 줄을 섰으나 요즘은 김밥 자체를 사서 가기 때문에 소풍이나 운동회를 개최해도 알지 못한다며 씁쓸해 하는 김 대표. 그의 눈망울엔 아직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예전엔 과자나 공산품이 많이 팔렸지만 최근 유동인구가 적다보니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발걸음도 줄어 부식 위주로 장사를 하고 있다.

또 인근에 큰 마트가 생겨 장사가 예전 같지 않아 이웃식당에 반찬을 납품해주거나 배에 부식을 대주고 배추김치를 직접 담궈 팔기도 한다.

취재중에도 구멍가게에는 갈치장사 아줌마가 들러 콩나물 3000원 치와 무를 검은봉지에 수북하게 담아 가는가 하면 동네 아낙들이 제 집 냉장고에서 달걀 꺼내 듯 편안히 물건을 사갔다.

이곳에서 파는 각종 야채의 품질은 단연 최고다. 인근 마을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직접 정성들여 가꾼 고구마줄기 가지 고추 미나리 호박 등은 무공해 웰빙 식품들이다.

또 시외버스 매표와 장목면 사람들을 다 볼 수 있는 중심지이기도 해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80%가 부산의 병원으로 가는 동네 주민들로 대화의 장이 구멍가게 안에서 이뤄지는 또 하나의 힐링(healing)이기도 하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오면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쉬었다 가라고 음료를 건네는 김 대표. "혼자 사는 어르신한테는 돈을 덜 받지"라며 친엄마처럼 할머니를 반기는 모습에 기자마저 흐뭇함에 빠져 버렸다.

"이제는 돈 벌 생각으로 장사 안하지. 손님 보는 재미로 하지. 놀면 뭐하겠어? 마을 어르신들, 동네 이웃, 아는 사람 보며 담소 나누고 그런 맛에 아직까지 장사를 하는 거지."

매년 피서철은 바빴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대형마트를 이용하거나 미리 준비를 해와 따로 성수기가 없다고 한다.

"2년 전부터 한계에 부딪혀 때로는 장사를 그만둬야 하는 갈등도 들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해야지"라며 "대부분의 동네잡화 상인들이 구멍가게의 미래를 5년 정도 보고 있다"고 말해 구멍가게의 안타까운 현실을 실감케 했다.

문득 유년의 기억이 그리워진다면…. 장동마을 산해종합식품을 찾아보면 어떨까? 그곳에 가면 잊혀졌던 기억의 한 자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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