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에서 살면서 늘 흙 속에서 뒹굴고 싶고, 그 길을 걷고 싶은 건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산을 오르고 싶은 욕망이나, 바다를 찾는 마음도 어쩌면 흙 속에 살려는 마음과 같은 것으로 자연에 귀의하고픈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고향 집을 간혹 찾는 것도 아이들과 함께 자연의 향취에 묻혀보고 싶은데서 비롯된다.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든, 아
생로병사 누구나 한 번씩은 지나야 하는 길인가. 병은 건너뛸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인가?친정어머니는 17세의 어린 나이로 결혼하시고 부부간에 금슬이 좋기로 동네에 소문이 난 부부였다. 매사에 솜씨가 좋아서 여름이면 하얀 모시옷을 입고 나란히 노인학교에 다니며 새벽마다 공부를 하였다. 아버지는 노인학교에서 강의할 자료를 정리하시고 어머니는 곁에서 천수경을 읽거
2010년에 완공예정인 거가대교 공사가 한창이다. 거제 장목면에서 10시 방향으로 차를 몰고 농소 바닷가를 거쳐 거가대교의 거제 끝부분인 유호리 상유부락 해안가의 낭떠러지 위에 거제시에서 만들어 놓은 전망대가 있다. 여기에 오르면 거가대교의 건설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5공화국시절까지 대통령 별장으로 즐겨 사용되었던 저도가 흉
초봄, 마을 앞 간척지 저수지. 붉은 벼슬을 주억거리며 물기새들이 분주하게 헤엄치고 다녔고, 갈대와 수초가 어우러진 곳에서는 산란기를 맞은 잉어들이 불쑥불쑥 꼬리를 물 위로 솟구치며 짝짓기에 여념이 없었다.하굣길 책 보따리 어깨에 대각선으로 멘 개구쟁이들이 둔덕 천 징검다리를 어미 따르는 새끼염소들처럼 건너 와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저수지 둑에서 피비(삘기
나이가 들어 갈수록 지나간 수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간다. 내가 살아온 대학시절은 신축년(辛丑,1961)에 시작하여 금년이 무자(戊子)년이 되고 보니 47년 전의 일이다. 당시는 경제적인 문제로 대학을 간다는 것이 무척 힘든 시대였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보다는 우선 경제적으로 해결 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치열한 경쟁 속에서 관비(官費)
농경사회에서는 직업의 단순화, 인간관계의 단출화, 구조의 일반화 등으로 힘센 남자가 그 사회를 지배해 왔다. 힘(Power)이 곧 왕이고 보스이다. 사냥을 해서 먹고살고 논밭을 일구는 힘센 장정이 지도자였다.16C 영국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산업사회가 되면서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돈이라는 재화가 필요하게 되고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회가 되면서 한층 다
친구 딸아이의 결혼식장에서 동창생들을 만났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코흘리개 개구쟁이였던 녀석들이 모두 중후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사업에 성공한 친구도 있었고 직장에서 간부가 된 사람도 있었다. 새침데기 여자애들 역시 온화한 중년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를 나누었다.나는 주위를 연신 살폈다. 며칠 전부터 밤잠을 설치게 했던 친구 &lsq
6·25전쟁의 포탄 소리가 멈춘 이듬해인 1954년 추석을 넘긴 청명한 가을 어느 날 오후, 이집 저집 굴뚝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막 피어 올라갈 때 나는 장목면 관포에서 태어나 5남매의 맏이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대개 농어촌이 그러하듯이 반농반어의 집안이었다. 그런데 내 생일이 다가오면 특별히 어머니 생각이 난다. 우리 어머니는 스물한
우리 학창 시절에는 책상머리에 우정, 인내, 노력, 성공 등의 글귀를 붙여놓고 공부했다. 친구와의 우정은 변치 말고 온갖 어려움을 참고 이기며 노력하여 성공을 하겠다는 좌우명이었다. 요즘 학생들도 뭐라고 글을 써 붙이는가를 잘 모르지만 아마도 우정이라는 단어는 안 쓸 것으로 본다.지금은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우정도 사랑도 헌신짝처럼 버리는 믿지 못할 세상이
‘까치 까치 설날은 오늘이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내일이래요~’.어렸을 적 부른 그 노래가 환청처럼 귀에 들린다. 어머니가 사두신 신발이며, 새 옷에 마음 설레며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던 설날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믐 저녁이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만두를 빚는 것이 우리 집안의 연례행사였다. 친정은 서울이고 시집은 황해도가 고향이라 모
음식 천지인 세상이다. 텔레비전에서도 전문 요리 프로그램 또는 요리를 주제로 한 토크쇼, 건강관련 음식 프로그램 등이 방영된다. 오히려 또 다른 한편으로 다이어트에 관련된 요법과 식이요법이 한창이다. 우리의 삶이 풍요하고 다양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과거의 시절을 어린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경우에 못 먹고 못 살았던 그때를 이야기하면, 측은한 눈초리로 &ld
시인은 노래한다. 그런데 계절을 따지면 봄과 가을이 가장 많은 것 같다. 또 하루를 따지면 한낮보다는 밤이 우세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게 본다면 봄과 가을의 밤에 관한 시가 가장 많을 것이라고 억측을 한 번 부려 본다. 그 많은 시 중에서 널리 애창되는 시는 복 받은 시임에 틀림이 없으리라.나는 학창시절에 시조를 즐겨 외웠는데, 짧아서 외기 쉽고 운율이
오늘은 사찰순례를 떠나는 날이다. 초여름 비가 그친 하늘가에는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산야는 초록빛으로 생기가 넘친다. 아침 일찍 거제에서 출발, 점심때가 지나서야 운문사에 도착하였다.운문사는 조계종 사찰로, 이름난 비구니 절이다. 이 절은 사방의 산들이 꽃잎처럼 겹겹이 싸여 있는 듯 산자수명한 절승의 명당지이다. 여기서 약 3㎞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나의 오른손 검지에 반지 하나가 늘 끼워져 있다. 18금으로 만든, 닳아서 형체가 많이 마모된 오래된 것이다.천주교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묵주기도 즉 로사리오 기도라 한다. 로사리오는 장미의 꽃다발을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우리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기까지의 전 생애를 묵상하면서 드리는 기도의 꽃다발이다. 묵주는 본디 나
“뎅그렁, 뎅그렁” 삼라만상이 잠든 새벽 4시쯤이면 산사에서 종소리가 들려온다. 종소리는 소나무 숲과 들판을 지나 촉촉한 땅에 닿을 듯 나직하게 다가와 중생들을 일깨워주는 소리다.산사의 종소리가 끝나고 나면 마을 교회당 종탑에서 둔탁한 금속성 종소리가 울렸다. 고요한 새벽 두 개의 종소리에 깨어나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는 것은 우
저녁 무렵, 아직 올 시간이 아닌데 우당탕 신발짝 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아들 녀석이 쏜살같이 들어온다. 수시 합격자 발표가 오늘 저녁 떴다는 것이다. “엄마! 나 믿재!”내 손을 꽉 잡고 의기양양하게 컴퓨터를 연다.“붙었나?”“후보다……”“후보?&rdquo
십오 년 만에 듣는 친구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첫 마디가, 라면만 보면 내 생각이 났다는 것이었다. 커다란 전기밥솥에 라면을 끓여 신김치와 먹던 기억 속에는 언제나 내가 있었다고 했다.남편에게까지 라면과 친구 이야기를 했다고 한 걸 보면 꽤 즐거운 기억이었던 모양이다. 친구와의 대화는 어린시절로 이어졌고, 이야기 보따리 속에서 즐거움과 아픔과 아쉬움이
오후에는 서울 공덕교회가 80주년 기념교회로 세운 키붕콕 원주민 마을로 탐방을 떠났다. 산 넘고 물 건너가는 계곡 협소한 길이었다. 김현숙 선교사는 그 마을 사람의 오토바이에 함께 탔고, 우리는 승합차로 덜컹거리는 길을 가다가 냇물이 불어서 차에 내려서 옷을 걷고 물을 건넜다.그 마을에서는 손님이 온다고 전통 옷을 입고 추장과 마을 사람들이 전통춤과 노래를
이번에 필리핀에 가게 된 동기는 지난번 브리키나파소에 보내고 이어 선교헌금을 필리핀에 보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서울 공능교회와 함께 민다나오 산페르난도 시에 낡은 교회를 새로 짓게 되었다. 드디어 공사가 끝나고 9월 2일 헌당식에 우리 목사님 내외분과 우리 부부가 교회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다.집에서 떠날 때는 비가 왔지만 비행기에 오르니 비가
베네치아 섬에 도착한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그림처럼 물 위에 떠 있는 이탈리아의 인공 섬이 천 년의 역사에 품위를 더 한다. 베네치아의 또 다른 이름은 베니스라고도 하는데 세계의 응접실로 불리는 산마르코 성당 광장에 선다. 여행객들의 무절제한 먹이로 인하여 비만의 비둘기 떼가 하늘을 덮었다. 인구 8만 명에 비둘기는 10만 마리가 넘는다니 번식률도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