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 하나 올려놓고 피어오르는 향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멈추어진 삼매에 빠진 듯한 황홀함을 느낀다.세상에 쓰라린 그 모든 것 우리 가슴에 안고 바람 따라 울고 흐느껴도 사회는 우리 마음 아직 몰라 울부짖는데 세상사는 흐름은 누가 알아주랴. 향의 향기는 바람에 따라 솟아오르다 다시 멈추고 우리들 마음으로 내려오는 그 향기가 그윽함에 생각할 뿐이다.(금강불
'좋은 일, 행복한 일, 모든 것이 세상을 살고 있는 하나일 것이다. 행복 속에도 괴로움이란 나는 것, 늙는 것, 병드는 것, 죽는 것, 인연과 헤어지는 것, 미워하는 사회인과 만나는 것, 구하는 것이 얻어지지 않는 것이다.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과연 세상에 사는 일인지 신앙표현 할 수 없지만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논의 되어 왔다. 매체에서
우리를 바로 볼 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 무형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우리입니다.그러므로 반짝이는 별, 춤추는 나비, 거리에 벚꽃들 등등이 모두 우리이며, 나만을 위하는 생각을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생각하게 되면 욕심이 자취를 감추고 마음의 눈이 열
마음이란 본래 '부증불감(不增不減)'이다. 아무리 붙잡고, 붙들어 매려해도 그냥 천연스레 흘러가는 것이 마음이요, 세월이다.덥다 춥다 변하는 마음에, 애착을 가지고 안절부절 하지 마라. 모든 소설, 모든 연속극에서 아웅다웅 싸우고 변하는 마음 때문에 시시비비다.아름다운 단풍잎도 언젠간 우리의 눈을 피할 것이고, 마음은 형상이 없는 것이라서 한곳에 머물거
세상 일이든 우리 지역 사회 일이든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일단 시작하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는 한 중도에서 내 던져서는 안된다.우직할 정도로 아무 생각없이 그저 꾸준히 이어 나갈 때, 그 안에서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맺히는 소식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들을 뜸도 들기 전에 도중에 내팽겨치고 말았는
수많은 신들과 인간들은 축복을 원하며 또 행복을 갈망하고 있다.고다마여, 최상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어리석은 자들을 가까이 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과 친교를 맺는것.그리고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요, 알맞는 장소에 살며 좋은일을 앞질러 하는 것 그리고 자기자신을 갈고 닦기에 온 힘을 쏟는 것 이것이 더 없는 행복이요, 학문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위에서 아래로 볼 마음의 꿈은 있을 것이다. 꿈은 생각만 가지고 가는 것은 없다. 실천하는 행동이 꼭 필요 할 뿐이다. 무심코 떠나는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치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니까! 그러나 배안에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삶에게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꽃들이 무수히 있다는 것을 생각 한다. 종점에서 조명을 순수한 모순이 더 생각날 때 부처님 경이 우리를 알 할 것이다.언제부턴가 삶을 어떻게 회향할까를 생각했다. 새파란 주제에 벌써부터 말년의 일이냐고 탓할지 모르지만, 순간에서 영원을 살려는 것이 생명현상이 아니겠는가. 어떤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를 보다 풍성하게 가꾸어주는 수가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진 채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사람들이 꿈을 쫓으며 살지 못하도록 뒷덜미를 잡는 가장 큰 방해 요인이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부와 풍족함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주어진 기회를 절대로 붙잡지 못한다.그들은 하는 일 없이 넉넉한 사람들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는다. 그리고 인생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정당화할 변명
시작과 태어남은 누구에게 자유에서 아니 타인으로 만들어 지고 생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사람의 한 평생 가운데 제일 중요한 순간이 언제인가? 시작하면서 무슨 일에 끝나기 직전이 가장 중요하다. 끝나기 직전에 어떤 마음을 품고 마무리에 따라 사람의 이름 이 달라지는 것이다.끝나기에 다다랐을 때 "내생에는 참선 정진하며 살아야지!" 하는 원
2010, 새해의 동창을 열고 자금색 아침을 맞는다. 늘 그렇듯이 새해 첫 날 아침은 기대에 들뜨고 희망이 넘친다. 그러나 시작과 함께 생각하게 된다. 기억되는 과거 상상하는 미래 현재는 미래의 입구에 홀로 서 있다.고개를 들어 붉은 동녁을 바라본다.어둠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금년 한해 우리도 태양같이 환한 세상 밝게 비추는 나날이 되어
‘지도론’에서도 날 일(日)에 좋은 날, 나쁜 날이 없지만, 세간의 인연따라서 행하여 간다고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불교가 중생의 복락을 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선이 된다면, 이 이치를 터득하여 더욱 무고안온의 경지인 해탈 열반의 보리를 이뤄나가는 과정으로 전환되어 가기 때문에 단순히 불교가 현세복락에만 치우치
사성제는 불교의 이론의 정수를 이르는 말로써 네가지의 성서러운 진리라는 뜻입니다. 그 첫째가 고성제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모두가 고통이라는 뜻인데 언젠가 제가 말씀드린 인생의 여덟 가지 고통이 여기에 해당되며 뒤에 나오는 집성제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둘째가 집성제입니다. 중생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번뇌와 망상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서 고성제의
부처님의 가르침은 교나 선이나 현교나 밀교나 대중 소승입니다 .한결같이 견성성불의 가르침 아님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성품인 진여불성은 비단 인간성의 본원일 뿐아니라 유정무정일체존재 의 근원이며 바로 우주생명자체인 것입니다. 불성은 불생불멸 하고 상주불변한 만덕보장이며 그대로 연화장세계요 일진법계며 불지견인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유규한 인류 역사룰 통하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겪는 고통은 얼마나 될까? 각자가 갖게 되는 고통은 다를 수 밖에 없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유형을 따라 가는 것 같다. 부처님은 인간이 겪는 고통을 크게 네가지 또는 여덟 가지로 설파하셨다.네 가지의 고통은 바로 생로병사의 고통이다. 그 첫째가 생고(生苦)이다. 즉 태어나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는 것
덥다하여도 어렵다하여도 우리의 문화는 계절앞에서 고개를 숙인다.떠나있는 모든 정이 하나로 모이게 하는 명절이 우리의 마음을 알게 할 것이다.多生父母 十種大恩나를 잉태하시고 지켜주신 은혜 (懷耽守護恩 : 회탐수호은)여러 겁을 내려오며 인연이 중하여서, 효의 태를 빌어 금생에 태어날 때, 날이 가고 달이 져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에 접어드니 육정이 열렸어
얼마 전 일요일에 모처럼의 시간을 내어 등산을 하였다. 김해 장유면 대청계곡 뒤의 용제봉을 목적지로 정했다.창원 마산 김해 진해 주변의 인근 산들,천주산 봉림산 비음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 시루봉 굴암산 무척산 등은 자주 오르는 곳들이고 용제봉도 빼 놓을 수 없는 코스인데 특히 용제봉은 집에서 바로 걸어 출발 할 수 있어 매우 자주 오르는 산이다. 오르는
50% 50% 생각이 같다면 판단은 오기와 타협이 일어나는데 언 사람은 코가 깨지는 일을 당하곤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날 때 인력(人力)으로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돌리고 맙니다. 이것을 역학에서는 삼재(三災)라고 얼버무리며 재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받아들이라는
지혜는 연습을 체험한 자가 수행에서 마음이 더 밝아졌고 보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며 나아가 삶에서 희망을 발견했으며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표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리가 우리 스스로 ‘이거야’라고 하면 이런 믿음은 놀라운 결과를 동반한다. 지역을 아름답게 바꾼다. 소극적인 사람이 외향적이고 사교적으로 변하며 사회
내 운명을 고치기 위해서는 성품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성품을 고친단 말인가?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아뢰아식에 좋은 종자를 많이 심고 나쁜 종자를 사라지게 해야 한다. 그러면 내 삶의 운명도 달라진다.성품 가운데 부정적인 것, 나쁜 습관을 씻어내야 하며.좋은 사람을 많이 사귀고 나쁜 사람을 멀리하며 좋은 말을 많이 듣고,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