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날, 해맞이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거리에서도 TV화면 속에서도 화사하고 활기차다.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하구나 생각한다. 해가 바뀌어도 내어 걸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는 세월에 딸려가지 않고 팔을 벌리고 맞아드리는 삶은 새롭고 신선하지 않겠는가. 새 기분 새 마음으로 또 한 해를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매진할 의사가 있음
연필꽂이엔 주인 없는 연필이 가득하다. 수업을 마치고 뒷정리하다 보면 주인을 잃고 애처로이 버려져 있는 연필이 두세 개 나온다. 그걸 하나둘 주워 담다 보니, 어느 새 연필꽂이에 가득하게 모인 것이다. 간혹 아이들이 다음날 와서는, ‘아, 여기 있었네. 잃어버린 줄 알았지 뭐예요.’ 하면 다행이다. 꼼꼼해서 제 것 확실히 챙기니 기특하다 싶어 머릴 쓰다듬어
봉사회 단체를 만들었다. 마음에 맞는 학원장들이었다. 우리가 시설에 가서 할 수 있는 것을 의논했다. 특기를 개발하고 적성에 맞는 것이 있다면 원과 연결시켜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의도였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아이의 소질과 적성을 개발한다.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키우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지나친 욕심으로 아이를 혹사시키기도 한다. 아이의 호기심
평소 전화를 자주 받는다. 그러나 오늘처럼 근심걱정을 날려버릴 것 같은 반가운 전화가 또 있을까 싶다.“엄마, 나 그 기업체에 합격했어요.”아들의 목소리가 기운차다. 대기업체에 서류를 내놓고 면접 보고 와서 가슴 졸이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을까. 안쓰러움과 기쁨이 뒤섞인 나는 금시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래, 애썼다. 정말
구불구불한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데 아까부터 목이 탔다. 옷의 소매를 둘둘 말아 올리고, 창문을 열어 찬 공기를 불러들인다.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려 보아도 오르막 경사는 끝날 기미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전에 와 본 기억도 없는 길, 작정하고 들어선 길은 더더욱 아니다. 서쪽하늘의 노을 탓이라고, 그것에 잠시 마음을 뺏겼노라고, 진정 그랬노라
작년 봄, 작은 아이가 다쳐 병원생활을 했다. 그 때 아이 친구가 심심할 거라며 금붕어 두 마리를 사다 놓고 갔다. 다음날 아침 병원에 들렀더니 한 녀석이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유유자적 헤엄칠 때는 잠깐씩 눈길을 두기도 했는데, 뻣뻣하게 굳어 있는 것을 보니 소름이 돋았다. 퇴원하는 날, 한 마리 남은 금붕어가 문제였다. 생각 끝에 병실에 두고 가자는데
제자리에 없다. 잃어버렸으면 어쩌나. 정말 아끼는 물건이다. 갖고 싶었던 것이기에 친정 부모님께 말씀드려 어렵게 얻은 것이다. 눈에 잘 띄는 큰 물건이 아니라서 더더욱 찾기가 어렵다. 주먹만한 것이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 눈앞이 컴컴하다. 난감함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멍하다. 물건이 반란을 일으킬 일은 없고. 대청소하다 필요 없는 물건과
가끔 고현시내에 나가곤 한다. 반찬거리를 사러 재래시장에 들르고, 생필품이 많은 큰 ‘마트’에도 들른다. 그리고 은행이며 관공서에 들러 밀린 일들을 한꺼번에 보기도 하고, 혼자 계시는 어머님을 찾아뵙는다. 고현은 내가 사는 곳에서 승용차로 삼십여 분 남짓, 시내버스로는 한 시간 거리다. 그다지 먼 곳이 아닌데도 새벽에 가게 일을 마치고 가는 날이면 고단하다
호영이는 지난 여름 이곳으로 이사했습니다. 이곳은 동리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인데 가끔 낚시꾼 아저씨들이 찾아옵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다가 낚시꾼들이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되자 낚시꾼 아저씨들마저 뜸해져서 한층 더 외롭습니다. 아버지마저 일터로 나가고 나면 늘 호영이 혼자입니다. 일년 전만 해도 엄마와 동생까지 네 식구가 단란
소꿉동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을여행 삼아 날 보러 오겠다는 그녀의 음성은 사뭇 들떠 있었다. 실상은 이곳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출장을 오게 된 것인데 어려운 걸음이니 지체가 되더라도 만나고 가겠다고 했다. 돌아갈 거리가 먼 것은 이 순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삼십여년이 넘도록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동무였으나 그녀는 자주 내 기억 속 한 자락을 차지하고는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나선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약수터를 찾는다. 그렇다고 물을 길어 오기 위해 다니는 건 아니다. 지나며 몇 모금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산길을 오르다보면 입이 말라 목을 축일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한다. 그것도 일급수의 약수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약수터 길이 예전엔 오솔길이었다.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었다
수능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니, 코앞에 닥쳤다. 아이들 모두가 긴장되고 불안해한다. 어느 때인들 시험에 대한 부담과 걱정이 없었을까마는 한 달 가량 남은 여유 앞에서 번뇌에 차 있는 아이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여태껏 해온 공부를 효율적으로 마무리하여 소망한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여느 집처럼 우리 집에도 고3 수험생이 있다. 특별히 수험생이라 신경
“호르륵, 호르륵.” 산새소리가 정겹다. 소리만 들어도 온 정신이 맑아진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나뭇잎들이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며 의지한다. 햇빛이 비추자 반짝이며 윤기를 더한다. 산길에 핀 꽃들도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고 섰다. 예쁘다. 산사를 향하는 나의 마음은 평온하다. 발걸음도 가볍다. 한 걸음이라도 서둘러 가족을 위한 기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차를 마셨습니다. 식후나, 사람을 만날 때나, 심심할 때 차를 마십니다. 비가 오면 분위기 살린다며 마시고, 우울하면 기분을 바꾸기 위해 마시고, 즐겁고 흥분되면 차분해지려고 마시기도 합니다. 더우면 냉차로 마시고, 감기가 올라치면 꿀과 함께 뜨겁게 다려 마시기도 합니다. “연잎 사이로 비껴간 바람은 어디로 흘러 가없는~”“꽃진후에 작은 새 우네~"연잎바람
어린 날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극성스럽게 달려드는 모기와 모깃불,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이다. 어둠이 내리면 여지없이 이 세 가지는 친근하게 내 곁으로 찾아온다. 비 오는 밤이 아니면 이것들은 내 곁으로 모여와 씨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마르지 않은 풀에서는 특유의 풀 내와 연기가 흘러나온다. 연기는 이리 저리 바람난 여자의 엉덩이를 그리며 흔들고 다닌
집을 지어 이사한 지 넉 달이 되었다. 이층에 아이들 방 두 칸이 있다. 아이들이 서울에서 생활하니 거의 비어 있다. 그래서 비어 있는 방에 민박을 하기로 했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소개로 사람을 들이다 보니 방값을 받는 순간이 참으로 민망하다. 나의 고민 아닌 고민을 듣고, 어떤 분은 아직 익숙하지 못해서 그렇지만 조금 지나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며
“이장댁이여?”그가 밭에 나간 날이면 나에게 붙는 호칭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리 부르는 것은 아니다. 농사꾼 마누라는 괜스레 멋쩍고, 그렇다고 농사를 짓지 않는 것도 아니니 마땅히 칭할 말이 없어서이다. 하여 옛날 마을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이장댁이란 호칭이 나오게 되었고, 재미삼아 몇 차례 부르고 답한 것이 그리 되었다.부재를 채 확인하기도 전에 잠
고민이다. 병문안을 가야하는데 어느 길을 택해야할지 망설여진다. 집 앞 도로를 건너면 계룡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다. 입구에서 오십여 미터 오르다보면 오른쪽 편으로 길을 터놓아 병원과 연결시켜 놓았다. 이 길이 나에게 있어선 지름길이다.물어보면 모두들 지름길을 선택하라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러고 싶다. 그런데도 미적거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장례식장이 입구
씁쓸하다. 아니 서글프다. 우리 지역의 전문 레코드점이 결국 간판을 내렸다. 운영난에 허덕이다 업종 변경을 감행했다. 제대로 된 음악 테이프이나 시디를 살 수 있는 유일한 집이었는데.몇 해 전에도 한번 놀란 적이 있다. 그 상점에서 낯선 사람들이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따지듯이 물었다. 이 집 어찌 됐냐고. 알 수 없다는 대답에 안타까웠다.
바깥놀이를 하려고 한다. 어느 장소가 좋을지 미리 사전답사를 해두어야 한다.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멀어서 아이들이 지치지는 않을지, 위험함은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바깥놀이를 위한 준비과정이다. 소풍이나 견학, 현장학습이라는 이름의 바깥놀이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정서적인